1992년 10월 3일.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에서 아일랜드 가수 시네이드 오코너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진을 박박 찢어버렸을 때 그것은 세계를 경악시킨 스캔들이 되었다. 이후 밥 딜런 30주년 기념 공연에서 관객들의 야유로 도저히 노래를 끝까지 부를 수 없게 된 그녀는 무반주로 밥 말리의 ‘전쟁 war’를 부르고 내려와 폭풍 같은 눈물을 흘린다.
한때 유럽에서 가장 신실한 가톨릭 국가로 여겨졌던 아일랜드 교계에 만연한 성폭력, 아동학대, 인권 침해를 공론화하는 트리거가 된 ‘막달레나 수녀원’, 일명 ‘막달레나 세탁소’ 사건은 2000년대 들어서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1922년부터 1996년까지 무려 74년간 권위 있는 종교 시설에서 일어난 인권 유린의 실상은 2002년 영화 ‘막달레나 시스터즈’(피터 뮬란)에 의해 드러났고 영화 개봉 후에 즉위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공식적으로 교회의 잘못을 인정해야 했다. 시네이드 오코너가 일찌감치 용기를 낸 데에는 어린 시절 막달레나 수녀원에서 자란 그녀의 사적 경험이 일정하게 작용했다고 한다.
2024년 베를린 영화제 개막작인 ‘이처럼 사소한 것들’(팀 밀란츠)은 다시 한 번 이 사건을 세상에 소환한다. 클레어 키건의 동명 원작소설에 기초한 이 영화는 가톨릭 수녀회가 운영해온 막달레나 세탁소가 사실은 낙태 여성, 미혼모를 비롯한 여성들을 감금, 폭행하고 값싸게 노동력을 착취해온 감옥이자 수용소였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영화를 보며 느끼는 아득한 절망감은 이 사건이 소수의 폭력이나 일탈이 아니라 교회를 구심점으로 한 공동체 구성원들의 오랜 암묵적 용인과 외면, 은폐에 의해 가능했다는 점에 있다. 한나 아렌트가 ‘사고가 결여된 직무 수행, 자발적 순응’이라고 표현한 ‘악의 평범성’이 나치즘을 가능케 했던 것처럼 ‘악의 평범성’이라는 테마는 이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맹수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