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미국과 한국 주식시장에서 기대하던 산타 랠리(Santa Rally)가 결국 불발됐지만, 가상자산 시장은 호조세를 보이면서 투자자의 이목을 끌었다. 산타 랠리는 통상 12월 마지막 5거래일과 1월 첫 2거래일 기간 중 주가가 상승하는 현상인데, 올해는 가상자산 시장, 특히 대장주인 비트코인에서 유사한 현상이 발생했다. 가상자산 거래 시황 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크리스마스 당일 비트코인 가격은 9만 7000~9000달러에서 오르내리며 전날 대비 약 5% 상승했다.
산타 랠리는 연말 낙관론, 휴가철 동안의 관심 증폭, 기관 활동 등 여러 요인의 결합으로 설명되는데, 역사적으로 1월 초 거래일은 연간 투자심리를 엿볼 수 있는 시금석으로 여겨져 특별히 주목받아 왔다. 관계기관에서는 이번 비트코인의 산타 랠리 현상이 가상자산 시장이 지난해보다 더욱 제도적이며 안정적이 되었다는 방증으로 보고, 2025년 성장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최근 국내 상황을 봐도 그렇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국내 가상자산 투자자 수는 단순 합산 기준 1559만명으로 이는 전월 말 대비 61만명 증가한 수치인데, 무엇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암호화폐 선호가 시장의 기대감을 고조시킨 영향 덕분이다. 특히 국내 5대 거래소(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고팍스)에 신규 계정이 대거 개설되면서 한국 시장의 성장세가 눈에 띄는 상황이다.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달 초 가상자산 산업의 육성을 공약하며 시장의 기대를 끌어올렸다. 트럼프 당선인은 취임 후 미국을 가장자산의 글로벌 리더로 자리매김하겠다고 선언했으며, 유명한 벤처 캐피털리스트인 데이비드 삭스를 인공지능(AI)·암호화폐 정책 책임자로 임명해 준비금 설립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었다. 이른바 ‘크립토(가상자산) 차르’에 오른 삭스 전 페이팔 최고운영책임자(COO)는 대표적인 친암호화폐 인물이기도 하다.
이러한 호조와 성장세에도 가상자산과 전통적인 금융시장 간 유사성을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잇따른다. 가상자산은 탈중앙화된 금융 시스템으로 변동성이 기본적으로 크다. 투기성 거래, 거시경제적 요인 및 내재가치 부족 등 다른 리스크 요인도 여럿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비롯한 주요국 제도권 통화기관에서 여전히 비축자산으로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도 가상자산 성장의 장애로 꼽힌다.
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직후 제롬 파월 연준(Fed) 의장은 비트코인 비축을 위한 법적 제도 마련에 대해 “그것은 의회가 고려해야 할 사안으로, 연준은 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파월 의장의 발언 후 비트코인 가격은 급락하며 가상자산 시장의 변동성을 재확인시켰다. 트럼프 당선으로 한 달 새 10만달러(약 1억4500만원)에 이어 10만8000달러 (약 1억 5120만 )까지 상승했던 비트코인 가격은 하루 만에 다시 10만달러 이하로 하락했으며, 지난 20일 기준 9만2000달러대까지 하락했다.
가상자산의 미래를 둘러싼 불확실성에도 지지자들은 디지털 자산이 금융을 혁신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회의론자들은 투기적 성격, 규제 문제, 급격한 변동성을 지적한다.
한국 정부는 이러한 변동성에 유의해가며 미국 정부의 동향에 따라 신중하게 대응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8일 당시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함께한 합동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우리 정부는 가상자산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 아니다”라며 미국 신정부의 관련 정책이 구체화되면 이에 대응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 가상자산 과세 유예 결정에 대해서는 “초기 제도 시행의 특성을 고려해 상황을 모니터링한 뒤 과세 시점을 조정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입장도 밝혔다.
국내 가상자산 전문가들은 미국의 암호화폐 산업 주도에 대응하기 위해 법적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법정화폐와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의 규제 체계를 선제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서는 규제의 명확성과 기술 혁신을 지원하는 정책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자칫 제도권의 개입이 가상자산의 본질인 ‘중앙기관과의 분리’라는 강점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따른다.
올해 비트코인에서 보인 산타 랠리는 가상자산이 전통적인 금융시장의 패턴을 따르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한국도 미국 등 주요 국가의 정책 변화에 신속히 대응하고, 국내 시장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국내외 불확실성이 극대화된 지금이 글로벌 흐름에 발맞추어 규제와 정책을 발전시켜야 할 시점이다.
강정민 UN SDGs 협회 연구원 unsdg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