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공항, 끔찍한 설계” 국내외 전문가 ‘콘크리트 둔덕=범죄 행위’ 지적

전문가들 “시멘트 둔덕 없었다면 대부분 살아남았을 것”
위치,높이,소재 모두 부적절…“세계 어디에서도 본 적 없어”
‘철새 이동,민가 등 고려 없이 정치논리로 공항 건설’ 지적도

전남 무안국제공항 항공기 사고 관련 국내외 전문가들이 사고를 키운 원인으로 활주로 끝 콘크리트로 된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를 꼽고 있다. 영국의 한 전문가는 무안공항의 이런 구조에 대해 “믿을 수 없이 끔찍하다”라는 평을 내놨다.

 

영국 공군 출신 항공 전문가 데이비드 리어마운트는 30일(한국 시간) 영국 스카이뉴스(Sky News)와 인터뷰에서 “무안공항 둔덕 설치는 범죄행위에 가깝다”고 일갈했다. 조류 충돌에 더해 기체결함이 의심되는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동체착륙에 무사히 성공했고 활주로를 지나는 동안 불꽃이나 손상이 일어나지 않았기에 콘크리트 둔덕만 없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남았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30일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인근의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이 전날 제주항공 여객기와의 충돌 여파로 파손돼 있다. 무안=연합뉴스

데이비드는 “비행기는 착륙 당시 시속 200마일(321㎞)의 속도를 내고 있었다. 활주로를 미끄러지며 이탈했는데, 이때까지도 기체 손상은 거의 없었다. 이 둔덕에 부딪히기 전까지는 말이다”고 분석했다.

 

그는 “조종사가 처했던 상황을 고려하면 가능한 최상의 착륙을 했다”며 “착륙 활주가 끝날 무렵 기체엔 큰 손상이 없었고, 화재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런데 항공기가 둔덕에 부딪혀 불이 났고 그게 탑승자들의 목숨을 앗아갔다”고 봤다.

 

데이비드가 언급한 둔덕은 로컬라이저 안테나(항공기 착륙을 유도하는 시설)가 설치된 구조물을 말한다. 로컬라이저는 보통 활주로와 같은 높이에 설치되지만, 무안공항은 수평을 맞춰야 한다는 이유로 흙더미 위 콘크리트 구조물에 설치됐다. 더욱이 원칙대로라면 로컬라이저 구조물은 기체가 쉽게 뚫고 나갈 수 있는 소재로 만들어져야 하지만, 무안공항은 단단한 시멘트 옹벽이 지상으로 7m 이상 올라와있다.

지난 29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승객과 승무원 181명이 탑승한 제주항공 여객기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가 난 항공기는 태국 방콕에서 출발해 무안으로 입국하던 제주항공 7C 2216편으로 랜딩기어 이상으로 동체착륙을 시도하다 로컬라이저 구조물에 부딪히면서 대규모 참사로 이어졌다. 무안=뉴시스

데이비드는 “저런 구조물이 거기 있어서는 안 된다. 로컬라이저 안테나는 원래 있어야 할 위치에 있지만 저렇게 단단한 구조물 안에 박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둔덕 설치에 대해 “믿을 수 없이 끔찍하다(unbelievably awful)”는 평과 함께 “범죄행위”라는 강한 비판을 덧붙였다.

 

이어 “둔덕 너머는 평평한 지형이다. 항공기가 조금 더 달려가면서 속도를 줄여 멈출 만한 공간은 충분했고, 그렇게만 됐다면 모두 살아남았을 것”이라며 “활주로와 불과 200m 거리에 저런 둔덕이 있다는 건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다(I’ve never seen anything like this anywhere ever before)”고 했다.

 

김인규 항공대학교 비행교육원장도 “둔덕이 없었다면 여객기는 지금보다는 좀 더 온전한 상태로 남았을 것”이라고 짚었다. 김 원장은 30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이같이 밝히면서 “사고 영상을 보면서 가장 의아했던 부분이 바로 둔덕이다. 어느 공항에서도 이런 높이의 둔덕을 본 적 없다”고 했다.

활주로 끝에서부터 로컬라이저까지의 거리는 불과 251m다. 콘크리트 둔덕에 대해 항공기가 주변 민가를 덮칠 것을 우려해서 설치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무안공항은 남측 활주로 라인에 여러 펜션과 주유소가 있으며, 활주로 북측 끝에는 약 500m 거리에 마을이 있다. 사고 여객기는 마지막에 북측에서 남측으로 향하는 19번 활주로에 역방향으로 착륙했다.

 

무안공항의 위치에 대해 순천만으로 향하는 철새들의 이동 경로라는 지적과 함께 민가와의 거리를 고려하지 않은 채 정치논리로만 건설됐기 때문이라는 비판도 거세게 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