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의 마지막 날을 며칠 앞둔 오후. 며칠만 지나면 2025년 새해다. 나는 새해가 좋다. 지난해에 못했던 걸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명분을 주니까. 새해가 오면 제일 먼저 무엇을 할까? 나는 시인이니까 내 마음에 드는 좋은 시를 한 스무 편쯤 썼으면 좋겠다. 시력 34년에 겨우 시집 5권밖에 못 냈으면서 욕심도 많다며 누군가는 웃겠지만, 왠지 새해엔 그리운 시마(詩魔)가 나를 찾아올 것만 같은 예감! 벌써 가슴이 뜨거워지고, 그동안 이곳저곳으로 쪼개어져 흐르던 감성들이 한 줄기 시내를 이루며 내게로 흘러오는 게 보인다. 새해 아침이 밝아오면 그 시내에 머리를 감고, 손과 발을 깨끗이 씻고, 책상 앞에 앉으리라. 그러곤 시로 가득한 내 기억 속으로 풍덩 빠지리라. 시는 기억 속에서 자라고, 그 기억을 아름답게 춤추게 만드는 건 시인의 열정일 테니.
우선 몸풀기를 위해 책꽂이에 꽂힌 올가 토카르추크(폴란드 작가, 2018년 노벨문학상 수상)의 “다정한 서술자”를 책상 위로 가져온다. 내 기억 속에서 춤추는 시어(詩語)들을 시의 숲으로 데려오려면 ‘다정한 서술자’가 필요하니까. 그리고 내가 아는 한, 그 역할을 아주 잘해줄 작가로 올가 토카르추크만 한 작가도 없으니까.
창문을 여니 찌를 듯 선명하고 홀릴 듯 단순한 겨울바람이 온몸을 감싼다. 그 바람 속에서 내 마음속 서술자의 목소리를 듣는다. “무엇보다 먼저 써야 한다. 마치 인생이 거기에 달려 있는 것처럼.” 그래, 쓰자. 쓰고 또 쓰자.
김상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