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집중투표제 도입 반대하는 MBK…이유는?

고려아연 vs MBK·영풍, 집중투표제 도입 두고 설전
MBK 과거 투자기업 중 ‘집중투표제’ 도입 0건
MBK파트너스 측 “고려아연 집중투표제 도입돼도 소수주주 신규이사 선임 불가능”

고려아연과 경영권 분쟁 중인 MBK파트너스가 이달 예정된 임시 주주총회 안건으로 올라온 ‘집중투표제’ 도입에 반대 입장을 내놓으면서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집중투표제는 소액주주 보호를 위한 대표적 제도로 거론되고 있지만, MBK파트너스 측은 이 제도가 도입되더라도 소수주주가 지지하는 이사 후보의 선임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고려아연 본사. 뉴시스

2일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은 오는 23일 임시주총을 앞두고 집중투표제도 도입을 촉구했다. 이를 통해 주주의 권익을 보호하고, 경영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집중투표제는 주식 1주 당 이사 선임 안건마다 1주씩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다. 즉 3명의 이사를 선임한다면 주식 1주당 3개의 의결권이 부여된다. 이 의결권을 특정 이사 후보 1명에게 몰아줄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집중투표제는 대주주보다는 소수주주에 유리한 제도란 평가를 받는다. 

 

고려아연 측은 “집중투표제는 이사 후보 투표 시 소수주주가 의결권을 특정 후보 1명 또는 여러 명에게 행사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면서 “소수주주를 비롯해 일반주주가 고려아연 현 경영진(최 회장 측)과 영풍·MBK파트너스 등 지배주주 입맛대로 이사회를 구성하는 것에 제동을 걸 수 있고, 전체 주주 이익을 고려해 의사결정을 하도록 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소액주주 연대는 고려아연의 이번 주주서한이 신뢰와 투명성을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과 주주 가치를 극대화하려는 경영진의 의지를 명확히 보여준다며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소액주주연대 플랫폼 ‘헤이홀더’는 최근 홈페이지를 통해 고려아연이 꺼내든 집중투표제 카드는 매우 훌륭한 선택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이어 “최윤범 회장 측이 이번 임시주총에서 소액주주의 권익 강화, 지배구조 개선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경영권 분쟁의 프레임을 완전히 바꿨다”고 분석했다.

 

 

반면 MBK파트너스와 영풍은 고려아연에 집중투표제가 도입된다고 하더라도 소수주주가 지지하는 이사 선임이 불가능하다며 ‘집중투표제는 소수주주를 위한 제도’라는 고려아연 측 주장을 반박했다. 1·2대 주주에게 80∼90%가 집중된 현 지분 구도에서는 오는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소수주주가 신규 이사 후보를 추천하더라도 의결권 지분 20% 이상을 갖고 있어야 해야 하는데, 이는 실질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IB업계 등에는 MBK파트너스가 대주주로서 이익은 극대화하면서도 소수주주를 비롯해 다른 주주들을 위한 주주친화정책에는 소극적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MBK파트너스가 과거 인수한 기업들에도 집중투표제를 도입하거나 정관 개정을 통해 소액주주 보호 방안을 강화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MBK 홈페이지 등에 따르면 역대 50여개사 포트폴리오 가운데 과거 국내 증시에서 거래됐거나 현재 상장돼 있는 기업은 △오스템임플란트 △커넥트웨이브 △오렌지라이프 △코웨이 △HK저축은행 △한미캐피탈 등 6곳이다. 

 

이 가운데 MBK파트너스가 투자한 시점 이후 집중투표제를 채택한 회사는 한곳도 없는 것으로 분석됐다. 대표적인 예로 2013년 MBK가 2호 펀드와 인수금융을 활용해 주식 30.9%를 1조1900억원에 인수한 한기업 A사는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상장사다. 

 

MBK파트너스가 지분을 보유한 2013년부터 2019년 초까지 A사 정관에는 제32조(이사의 선임)와 제34조(이사의 보선)를 통해 2인 이상의 이사를 선임하는 경우 상법에서 규정하는 집중투표제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기술돼 있다.   

 

나머지 기업 5곳의 정관 역시 이사 선임 과정에서 집중투표제를 배제하는 조항을 뒀다. 최근 MBK파트너스가 집중투표제에 대해 밝힌 입장과 달리 집중투표제 도입 자체를 꺼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오히려 소수주주 이익을 침해하는 행태도 보였다. 대표적인 게 상장폐지이다. 2006년에 투자한 코스닥 상장사 B기업은 2009년 공개매수를 거쳐 자진 상장폐지됐다. 또 다른 코스닥 상장업체 역시, MBK가 인수한지 5개월 만인 2023년 8월 증시에서 퇴장했다.   

 

코스닥 상장기업인 C사 역시 MBK가 지분을 모두 확보한 뒤 상장폐지 절차를 밟았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사모펀드가 인수한 기업들을 향후 자진 상폐하는 관행이 소액주주의 재산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제도적 해법을 논의 중이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주식시장 활성화 TF 주최로 열린 ‘자발적 상장폐지 주주가치 보호를 위한 제도적 해법 모색 토론회’에서 해당 기업 C사의 주주연대 대표는 “MBK가 인수한 뒤 주가 누르기에 나서 주가가 1만원 수준으로 떨어졌고 1만8000원에 공개매수를 실시했는데 터무니 없는 가격이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재계 관계자는 “MBK파트너스가 고려아연 M&A를 추진하며 주주가치 제고와 지배구조 개선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과거 투자기업에 대한 행보는 정반대였다”며 “소액주주 권익을 외면하고 투자금 회수에만 급급한 MBK의 행태를 돌아보면 주주가치제고나 주주친화정책이라는 명분은 허울 뿐이라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려워 보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