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는데, 이렇게 빨리 가다니···.”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1주일만에 희생자 3명의 부고장을 접한 광주에 사는 김모(57)씨는 “어떻게 한꺼번에 이런 슬픔이 올 수 있느냐”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씨는 10년 이상 모임을 하던 회원의 부고장을 가장 먼저 받았다. 이후 하룻사이에 직장 동료와 지인의 상주로부터 2개의 부음 소식을 들었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 179명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장례를 치르면서 광주·전남 지역사회 전체가 깊은 슬픔에 잠겨있다. 광주·전남지역 희생자가 157명으로 87%를 차지해 지역민 모두가 부고장 한 두 개 정도는 받았기때문이다.
희생자 상당수가 부부와 부자, 모녀 등 가족단위가 많아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조문객들은 모처럼 가족끼리 시간을 내 여행을 갔다가 참변을 당한 소식에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부모와 딸 부부, 손자 등 희생자 5명의 장례식이 동시에 열린 전남 영광 한 장례식장에서는 마을 사람들의 통곡 소리가 이어졌다. 20가구의 마을에서 귀여움을 독자치하던 ‘동네 손자’가 이번 사고에서 희생되자 “동네에 생기가 사라졌다”고 망연자실했다. 이 마을 한 주민은 “6살 손주의 재롱에 온 동네가 웃음꽃이 피었다”며 “이제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어 얼마나 애통한지 모르겠다”고 했다.
10년 지기를 떠나 보낸 전남 화순에 사는 박모(59)씨는 요즘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박씨는 “아직 작별할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먼저 가면 어떡하냐”고 지인의 영정 앞에서 울먹였다. 그는 살아 생전에 좀 더 잘 해주지 못한 것이 내내 가슴에 사뭇쳐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광주의 한 학원은 “원장께서 참사로 운명하셨다. 원장의 교육 가치관과 철학을 믿고 맡겨주신 학부모들께 감사하며 휴강한다”고 알렸다. 학부모는 “학원장과 교사들을 좋아해 아이를 비롯해 수십 명이 다니고 있는데 현실로 접하니 멍한 기분이 들었고 눈물이 저절로 흘렀다”며 “아이가 장례식장이라도 가고 싶다고 해 다녀올 생각이다”고 말했다.
희생자의 치과를 이용했던 40대 여성은 “원장이 명함까지 주며 ‘통증이 심하면 새벽에라도 연락하라’고 할 정도로 친절했다”며 눈물을 보였다.
전·현직 공무원 8명 등 지역민 13명이 희생된 화순군은 분향소를 설치했으며 주인 없는 책상에는 희생자를 추모하는 글귀 등으로 채워졌다.
장례절차를 지원하고 있는 광주시 한 관계자는 “희생자의 직업군도 다양하고 유족의 지인까지 포함하면 수만 명이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여기저기서 부고 소식만 들린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광주와 전남지역 사회가 침울한 분위기에 휩싸인 만큼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통한 국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가 발생한 무안지역만 특별재난지역 선포됐으며 광주시도 정부에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광주시와 전남도는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피해자가 가장 많은 지역에 대한 안정적 지원을 위해 피해지원 특별법 제정 등을 건의할 계획이다.
특별법에는 피해자 생활·의료비지원, 미성년 피해자 성인까지 지원, 희생자 유가족 국립트라우마 치유센터 이용, 기억의 공간 조성, 악성 유언비어 생산자 처벌 등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또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통해 침체된 지역경제를 활성화 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김경민 호남권트라우마센터 센터장은 “광주와 전남지역은 희생자가 많아 유족·지인까지도 피해자로 분류해야 한다”며 “사고 소식을 접한 모든 이들이 심리적 어려움을 경험할 수 있는 만큼 국가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심리적으로 힘들 때는 격려와 위로 등을 통해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지역사회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며 “24시간 이용이 가능한 정신건강센터(1577-0199)로 연락해 상담을 받는 등 전문가의 도움도 지속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