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방관’ 시사회에 가는 날 아침, 충혼탑을 찾아 순직한 동료들에게 이야기를 건넸어요. 사람들이 홍제동 참사를 잊지 않고 기억해 주고 있으니, 남은 후배들을 잘 지켜봐 달라고요.”
소방관 사이에서는 ‘소방의 역사는 홍제동 참사 전과 후로 나뉜다’는 말이 있다. 6명의 구조대원이 순직한 2001년 3월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참사로 소방관의 열악한 처우가 조명되며 장비나 근무여건 등에서 많은 개선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당시 동료 구조에 나섰던 이성촌 서울119특수구조단 특수구조대 팀장(소방경·58)은 지난달 30일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영화를 차마 다 보지를 못했다. 당시 함께했던 동료가 생각나 도중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홍제동 참사는 2층 다세대주택 건물 붕괴로 구조작업 중이던 소방관 6명이 순직한 사건이다. 단일 사건으로는 가장 많은 소방관이 사망했다. 당시 대원들은 1차 수색으로 모든 구조 대상자를 피신시켰으나, ‘안에 아들이 있다’는 말에 재수색에 들어갔다 참변을 당했다. 다시 구조하러 들어갔던 대상자가 방화범이었고, 불을 지른 직후 다른 곳으로 몸을 숨겼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 팀장은 비번 도중 긴급 출동 명령을 받아 같은 팀 동료의 구조작업에 나섰다. 영화 속 주인공인 신입 소방관 최철웅 소방사(주원 분)의 실제 모델이다. “밤새 구조작업을 한창 벌이던 중에 ‘그 사람이 방화범이었다’는 말과 병원으로 이송한 동료가 순직했다는 소식이 차례로 들려왔다”며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좌절감을 느끼며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그의 눈시울은 금세 붉어졌다. 지난해 3월 사고 장소는 ‘소방영웅길’로 지정됐지만, 그는 사고 현장을 다시 찾아가지 못하고 있다.
사고 후 열악한 소방관의 현실이 드러나며 대중의 관심이 커졌고, 이는 처우 개선으로 이어졌다. 방화복이 아닌 비옷(방수복)을 입고, 보급되는 장갑이 열악해 목장갑을 직접 사서 끼던 현실은 차츰 개선됐다. 교대근무 방식 개선, 생명수당 인상, 승진 기회 확대 등도 이뤄졌다. 이 팀장은 “영화 속 내용처럼 대장이 사주는 고급 장갑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고 씁쓸하게 웃었다.
소방관에 대한 인식과 처우 개선에도 현장의 고충은 여전하다. 가장 힘든 일 중 하나가 화재 현장에 불법주차된 차량의 강제처분 문제다. 2018년 불법주차된 차량을 옮기거나 파손할 수 있도록 관련 법이 개정됐지만 현실에선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이 팀장은 “법은 개정됐지만, 실행했을 경우 민원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엄청나게 크다”며 “지금도 차라리 소방호스를 더 연결하거나 대원들이 뛰어가는 실정”이라고 했다.
그는 “현장 지휘관의 판단에 대해 결과론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모든 화재의 양상이 다른데, 매번 진화를 위해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생기는 책임을 지휘관에게 몰아가는 점이 현장의 또 다른 어려움”이라고 덧붙였다.
이 팀장은 특히 국민이 소방관에게 보내고 있는 전폭적인 믿음과 애정에 감사의 뜻을 나타냈다. 그는 “소방관을 키운 것은 국민”이라는 말을 후배들에게 많이 한다고 했다. 이 팀장은 “(활동 과정에서) 전신 30%에 3도 화상을 입었지만, 나머지 몸에 다 화상을 입는 한이 있어도 받은 사랑을 시민들에게 돌려주겠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우리 소방관은 시민의 발을 맞춰가며 24시간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세이프 코리아’를 만들어 가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