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기술의 급격한 발전은 미래 정부에 대한 다양한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핵심은 전통적 관료제 정부의 한계를 극복하고 변화하는 환경에 적합한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데 있다. 한 예로, 몇 년 전 다보스포럼에서 미래의 정부는 FAST(Flat, Agile, Streamlined, Tech-enabled·평평하고 민첩하며 간소화하고 기술기반)정부 형태로의 발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개진되었다. 미래 정부의 모습이 반드시 FAST정부로만 이해할 필요는 없으나 어떤 개념으로 제시되든 미래 정부의 공통속성을 지칭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혁신을 꾸준히 추진해 온 우리 정부는 과연 미래 정부의 모습을 제대로 만들어가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먼저, 평평해진다는 것은 전통적 관료제의 계층과 경직성을 파괴하고 권한과 책임을 위임하여 현장에서의 빠른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구조적 모습은 장관-차관-실장-국장-과장-담당자 등 몇 단계의 계층을 거쳐야 하는 정책 품의 과정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한때 계층을 축소하여 책임과 권한을 통합하려는 시도로 본부·팀제를 추진했었지만, 정권이 바뀌니 슬그머니 사라졌다.
민첩한 조직은 자체 오류나 환경 변화에 따라 발생하는 문제를 신속하게 개선하고 대응하는 것이다. 현 정부 초기에 정부를 민첩하게 만들겠다는 의욕을 보였지만 정책 과정의 부처 간 협업 부족, 몰리는 이슈를 적시에 처리하지 못해 발생하는 병목현상이나 추진하는 정책의 신속한 오류 수정이 난망한 상태임을 국민은 의료정책이나 부동산 정책 등을 통해 익히 경험하고 있다.
간소화는 업무 처리 절차의 복잡성을 최소화하고 불필요한 규제를 걷어내 조직 운영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것이다. 정부 규제는 규제 망국이라고 할 정도로 질타받지만, 규제의 대못이 속 시원하게 뽑힌 적이 있나 싶다. 미국의 정부효율부를 맡게 될 일론 머스크의 일성이 정부 규제를 철폐하겠다는 것에서 정부 규제 철폐의 어려움이 드러난다. 반면에, 복잡한 업무절차나 제출 서류는 상대적으로 개선되고 있으며 앞서가는 에스토니아나 싱가포르 못지않다. 민원 신청 과정이 간소화되고, 전자적 서류 제출이 가능하며 그 범위를 넓혀 가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기술 활용은 정부 혁신의 핵심전략이다. 최근 디지털 기술의 적극적인 적용을 통한 정부의 디지털화는 정부 서비스 전달 과정이 좋아지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특히 새해부터 모바일 전자주민증이 일부 지역에서 시범적으로 발급된다고 한다. 개인정보 유출 염려 등으로 이명박정부 시절 추진하려다 멈췄던 ‘스마트카드’ 사업이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
스치듯 짚어본 우리 정부의 변화 모습을 하나로 단정지을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우리 정부 내에 이중나선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나는 전통적 관료제적 구조, 조직문화와 일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디지털화이다. 이런 이중적 관계는 결국 정부의 혁신 효율성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관료제적 조직문화와 칸막이식 일하는 방식이 변하지 않으면 대국민 서비스 전달체계 개선과 정부의 디지털화 효과는 결국 한계에 직면할 것이다.
에스토니아, 핀란드, 싱가포르, 덴마크 등 미래 정부 구축에 앞서가는 나라들은 각자 그들의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다. 디지털 기술로 덧씌우며 K혁신이라고 부르기 전에, 관료제 정부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우리는 그들과 무엇이 다른지 곰곰이 짚어보는 새해가 되길 바란다.
오철호 숭실대 교수·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