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노골적인 ‘내정간섭’ 행보에 유럽 국가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지만, 정작 유럽연합(EU)은 회원국에 대한 정치간섭 논란에 함구하고 있다.
7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 등에 따르면 파울라 핀노 EU 집행위 수석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유럽 정상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EU의 정치적 목소리는 실종됐다’는 지적에 “현재로서는 논쟁을 부추기지 않겠다는 게 우리의 정치적 선택”이라고 답했다. 전날 정례브리핑에서 머스크의 언행에 대한 EU 대응 계획을 묻는 질문에 원론적 답변을 되풀이한 데 이어 또다시 수동적 태도를 보인 것이다.
집행위의 소극적 태도를 두고 머스크가 곧 출범하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최고 실세가 된 점을 의식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집행위가 머스크의 발언을 비판하거나 엑스를 상대로 EU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규제 등을 적용할 경우 트럼프 행정부와 갈등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요나스 가르 스토어 노르웨이 총리도 “SNS에 상당한 접근 권한과 막대한 경제적 자원을 가진 사람이 다른 나라의 내정에 직접 관여하는 것은 우려스럽다”고 비판에 나섰다.
스페인은 필라 알레그리아 정부 대변인이 “엑스(X·옛 트위터)와 같은 디지털 플랫폼은 절대 중립을 지키고 무엇보다도 어떤 종류의 간섭도 없이 행동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머스크가 5일 엑스에 스페인 내 성폭행 혐의로 수감된 외국인 통계를 언급한 데 대한 반발이다.
머스크의 타깃이 된 영국은 공격의 빌미가 된 미성년자 성범죄 문제에 대한 대응에 나섰다. BBC방송은 이베트 쿠퍼 내무장관이 “올해 봄 발의할 ‘범죄치안법안’에 아동 성학대를 신고하지 않거나 은폐하면 직업적, 형사적 제재를 받는 내용을 포함하겠다”고 전날 하원에서 밝혔다고 7일 보도했다. 머스크는 앞서 자신의 엑스를 통해 스타머 영국 총리가 2008∼2013년 왕립검찰청(CPS) 청장이었을 때 아동 성착취 사건을 은폐했다고 비난하며 재조사와 스타머 총리 사퇴를 주장했다. 머스크의 문제 제기로 10여 년 전 미성년자 그루밍 성착취 사태를 둘러싼 논쟁이 현재 영국에서 재점화된 상태로 보수당, 영국개혁당 등 보수 야당은 전국적 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스타머 총리는 “부화뇌동한다”며 야당을 비판하는 동시에 제도적 보완을 통해 대응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