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25-01-09 07:48:22
기사수정 2025-01-09 07:48:22
트럼프 관련 사안에 침묵·회피 일관…SNS 규제법도 시험대
"미국 해병대가 그린란드에 상륙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겁니까, 아니면 대체 뭐예요?"
8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정례브리핑장. EU 전문매체인 유락티브 기자가 마이크를 쥔 채 발끈했다.
그는 "곧 취임할 미국의 대통령이 그렇게나 노골적인 발언을 했는 데도 입장을 내지 않겠다니"라며 "미군이 상륙하면 그제야 '가정적' 질문이 아닌 게 되는 것이냐"라고 따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전날 덴마크령 그린란드를 편입하기 위해 경제·군사적 강압수단 동원 가능성도 시사한 데 대한 EU 대응방안에 관한 질의가 쇄도했지만 회피성 답변으로 일관하자 나온 반응이다.
파울라 핀호 EU 집행위원회 수석 대변인은 "아직 실현되지 않은 위협에 대해서 언급할 필요를 못 느낀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자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에도 EU 집행위와 일부 회원국 당국자들은 러시아의 침공이 '가상의 시나리오'여서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어제 트럼프의 발언은 EU 회원국에 대한 실질적인 군사적 위협을 했고, 그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의 대통령 당선인이다. 위험성을 자각하고 있느냐 아니면 2022년과 마찬가지 입장인가"라고 질의했다.
이에 대해서도 핀호 수석 대변인은 "매우 가정적(very theoretical)인 질문"이라고 치부했다.
집행위 반응은 독일, 프랑스 등 EU 주요 회원국들이 잇달아 무력사용은 안 된다고 목소리를 낸 것과 대조적이다.
최근 집행위는 트럼프 당선인과 관련된 다른 사안에 있어서도 철저히 로키(low-key·절제된 방식) 기조를 고수하고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이 유럽의 정치에 개입한다는 논란이 거세지만 그간 제3국 선거여론 조작에 목소리를 내던 집행위가 정작 '안방' 문제에 침묵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EU가 2023년 12월부터 엑스를 상대로 진행 중인 디지털서비스법(DSA) 위반 조사도 1년 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트럼프 행정부와 갈등 가능성을 우려해 일부러 조사를 질질 끄는 것 아니냐는 해석마저 나온다.
작년 2월 시행된 DSA는 온라인상 허위정보, 유해·불법 콘텐츠 확산을 방지하고 미성년자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세계 최초의 포괄적 디지털 규제로 불린다.
엑스와 페이스북 등 EU 내 월평균 이용자수가 4천500만명을 넘는 플랫폼은 '초대형 온라인 플랫폼'(VLOP)으로 지정돼 법 위반 시 전세계 매출의 최대 6%에 해당하는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
머스크를 필두로 미국 빅테크들이 '트럼프 충성맹세'에 나서면서 DSA가 시행 1년 만에 위기를 맞았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는 7일 미국 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가짜뉴스를 판별하는 제3자의 팩트체킹 기능을 폐지하겠다고 선언했다.
SNS 플랫폼의 팩트체킹 기능이 우파 진영에 불리하게 치우쳐 있다는 트럼프 당선인 주장을 반영한 것이다.
이에 대해 토마 레니에 EU 기술주권 담당 대변인은 "DSA는 EU내에서만 적용되므로 페이스북의 미국내 조처에 대해선 언급할 말이 없다"고 거리를 뒀다.
'미국 페이스북'에 한정된 것이어서 EU 이용자와는 무관하다는 것인데, 가짜뉴스와 허위정보가 국경을 가리지 않고 확산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궁색한 답변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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