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 빈곤 시달리는 2030세대 ‘오겜’ 시즌2 주요 참가자로 등장 코인·주식 등 불확실한 운에 베팅 현 세태의 단면 신랄하게 그려내
“선물은 하나! 빵과 복권. 둘 중 하나만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2에서 딱지맨(공유)이 탑골공원 노숙인들에게 건넨 선택지다. 빵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복권은 수익은 높지만 불확실한 운이다. 혹은 에너지를 태워 일할 수 있게 해 주는 일용할 양식과 대박을 바라는 헛된 욕망의 대결일 수 있다. 노숙인 대다수는 복권을 선택한다. 결과는 모두 ‘꽝!’ 딱지맨은 선택받지 못한 빵을 구둣발로 짓이긴다. 확실한 행복을 눈앞에 두고도 운에 베팅한 사람들을 경멸하면서.
그런 딱지남이 중요한 순간 꺼내는 게임이 ‘러시안룰렛’이라는 건 의미심장하다. 6개의 총알이 들어가는 회전식 연발 권총에 총알 하나를 넣고 탄창을 빙그르르 돌린 후, 머리에 총구를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게임. 살아날 확률 6분의 5. 재수 옴 붙어서 6분의 1 확률에 걸리면? “빵!” 즉사다. 이 게임 안에서 죽고 사는 문제는 그저, 복불복(福不福)이다. 그러니까, 운이다. 1화에 등장하는 빵과 복권, 러시안룰렛 에피소드는 이후 본격적으로 펼쳐질 ‘오징어 게임’의 핵심을 압축한다는 점에서 강렬하다.
도박과 코인, 사업 실패, 정리 해고 등의 이유로 빚을 지고 ‘오징어 게임’에 참여한 플레이어는 456명. 게임에 걸린 총상금은 456억원이다. 1명의 탈락자(사망자)가 생길 때마다 돼지저금통에는 1억원이 적립된다. 그러니까, 상금은 죽어 나간 사람들의 목숨값이다. 이것은 경쟁에서 살아남는 최후의 1인이 돈을 독식하는 제로섬 게임. 사람 목숨이 판돈으로 걸린 게임이라는 점에서 러시안룰렛과 같다.
다행히 단계별 게임 후 살아남은 참가자들에겐 자신의 머리에 방아쇠를 당기지 않을 수 있는 선택권이 있다. 딱지맨이 그랬듯, 게임 주최 측은 생존자들에게 선택지를 준다. “여러분은 게임이 끝날 때마다 투표를 통해 그때까지 적립된 상금을 (똑같이 나눠 가지고) 이곳을 나가실 수 있습니다. 게임 속행을 원하시면 O, 중단을 원하시면 X를 눌러주시면 됩니다.” 확실하게 손에 쥘 수 있는 적립된 상금(빵) vs 단 1인만이 차지할 수 있는 456억원(복권). 후자를 위해선 455명이 죽어야 한다. 당신이 게임 참가자라면 어느 쪽에 베팅할 것인가.
수십 명이 죽는 걸 보면서 금방이라도 게임을 중단할 것처럼 파르르 떨던 과반수의 사람들은 막상, 거액의 돈을 보자 “한 판 더!”를 외친다. 왜 그럴까. 문득 투자전문가와 정치학자, 역사학자, 사회학자가 둘러앉아 토론 모습을 상상해본다. 투자전문가가 “앞선 운을 실력으로 착각해서 더 큰 돈을 베팅하는 도박사의 오류에 빠진 것”이라고 진단하자, 정치학자가 “민주적이란 가면 뒤로 참가자들의 갈등을 부추긴 설계자들 탓”이라고 받아치고, 사회학자가 “이들을 이렇게 내몬 사회 시스템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때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역사학자가 “인간은 역시 놀이하는 동물(호모 루덴스)”이구나 탄식하는 모습을.
2021년 나온 시즌1과 이번 시즌2의 차이 중 하나라면, 코인 투기로 빚을 진 20·30대 청년 세대가 대거 게임에 출전한 풍경이다. 엄밀히 말해, 지금의 청년들은 절대적 빈곤에 놓인 세대는 아니다. 이들을 괴롭히는 건, 상대적 빈곤이다. 상대적 빈곤 상태에서 중요한 건, 내가 가난한 게 아니라 옆집에 사는 영희·철수보다 더 가난하다는 사실이다. 가만히 있으면 벼락거지가 되고, 벼락거지 피하려다 하우스푸어가 되는 세상. 대한민국은 선진국이라는데, 거지라고 자조하는 사람들은 왜 이리 많은지. 여기엔, 타인의 시선을 곁눈질하며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반영돼 있다. 시즌2에서 “한 판 더!”를 외치는 무리 중심에 젊은 세대들이 있는 건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대박의 꿈을 버리지 못해 코인으로 큰 빚을 진 이들이, ‘오징어 게임’ 안에서도 행운에 목숨을 베팅하는 실수를 반복하는 모습이 뼈 아프다. 허약한 시스템과 어른들이 이 사달의 공범임은 물론이다. 잊지 말 것. 운으로 한 번은 살아남을 수 있다. 그다음에도 운 좋게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나, 멈추지 않으면 총알은 틀림없이 발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