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7월 말,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열린 태평양 전선 전략회의는 동아시아 냉전의 서막으로 이어지는 전환점이었다. 이 회의에는 루스벨트 대통령, 리히 육해군 총사령관, 태평양 전선의 최고 지휘관인 맥아더 장군과 니미츠 제독이 참석해 미군의 다음 군사적 목표로 필리핀 루손과 대만 중 어느 지역을 우선 공략할지를 논의했다.
회의에서 맥아더는 군사적 중요성에 더해, 과거 식민지였던 필리핀 해방이 미국의 도덕적 책임임을 강조하며 루손을 우선 점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대만 상륙과 중국 해안 공격을 강력히 지지했던 킹 해군 참모총장의 입장을 대변한 니미츠는 대만이 일본군 병참선을 차단하고 중국 본토에서 일본군을 압박하며, 일본 본토 공략을 위한 전략적 거점이 될 수 있다는 논리를 펼쳤다. 그는 루손을 건너뛰고 대만을 공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필리핀 해방의 상징성을 통해 대중적 지지를 얻으려는 정치적 계산에서 맥아더의 견해에 동조했다. 이에 더해 이후 합동참모본부는 당시 미국의 전반적인 군사 상황을 고려해 루손 공략을 채택했다. 유럽 전선에서는 노르망디 상륙 이후 병참과 병력 부족으로 인해 독일 본토로의 진격이 지연되고 있었다. 미국의 ‘선독일 후일본’ 대전략 아래에서 대만 상륙과 중국 지원에 필요한 대규모 병력과 자원을 유럽에서 태평양으로 돌리기가 쉽지 않았다. 또한, 미 해군의 해상 수송 능력은 이미 한계에 도달한 상태였다. 일본군의 ‘대륙타통작전’으로 중국 국민당군이 내륙으로 후퇴하면서, 중국과의 연계는 더욱 어려워졌다.
심호섭 육군사관학교 교수·군사사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