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 정원수들이 장소 안에 들어선다. 유일한 하나이자 복제된 여럿으로서, 각자의 주형에서 태어난 조각은 기계문명의 은유이자 대량생산의 표상이다. 김병호의 기계정원은 조형의 기초 요소를 암시하는 금속 모듈을 재료 삼아 가꾸어진다. 문명사회의 질서정연한 풍경 속에서 구현 가능한 기하학적 미감을 탐구하는 일이다.
정원이란 인간이 길들일 수 있는 규모의 작은 우주다. 작가는 우거진 숲을 다듬어 인공 정원을 가꾸듯 기계문명 특유의 조형적 가치를 탐닉한다. 시야에 가장 먼저 포착되는 것은 빼곡히 돋아난 빛점의 집합이다. 주위의 광원을 반사하는 찬란한 금속 타원구들이 보는 자의 주의를 사로잡는 탓이다. 시선은 총체적 전경으로부터 미시적 구조를 향하여 나아간다. 부풀어 오른 구체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지탱하는 선형의 기둥을 지나, 원자재인 금속의 표면을 가늠하는 눈길의 경로를 따라서다. 눈부신 전경 가운데 선과 면의 요소는 부피의 그림자 뒤로 감추어진다.
◆탐미적 형태
김병호의 조형 언어는 기계문명과 자연세계의 구성 원리를 섬세하게 중첩시킨다. 인위적 공정에 의하여 유기적으로 연결된 조형의 최소 단위들은 세포가 생명체를 구성하듯 형상이 되고, 개인이 모여 집단을 이루듯 복합적 풍경을 구축한다. 기계정원 속 조경수들은 설계도면 바깥에 놓인 현실의 장소와 상호적 관계를 구축하는 입체로서 거듭난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현실의 물리적 공간과 관계 맺으면서다.
◆삼차원의 공간구성: 양가적 시선
곡면의 기하학적 구성을 펼쳐 놓은 ‘정원의 단면’(2024)은 면의 요소를 전면에 내세운다. 두께를 지닌 금속 판을 각기 다른 곡률로 구부려 정교하게 결합한 조각의 몸체는 장소 안에 우뚝 서거나 가로누운 자세를 취함으로써 유기적 자연의 풍경을 은유한다. 검은 피막을 입은 잎사귀 형태의 단면들이 조형성을 강조하는 한편, 매끈하게 연마된 윤곽부의 가느다란 선이 본연의 재질을 은연중 내비친다. 형태의 능선을 타고 흐르는 조명의 빛은 가공된 재단 면 모서리에 이를 때마다 섬광처럼 가파르게 선명해진다.
‘아홉 번의 관찰’(2024)에서 원형의 모듈들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나열된다. 측면부 모서리를 정면에 내세워 원추형으로 부푼 두께를 드러낸 채다. 크고 작은 아홉 개의 눈동자가 서로를 투영하며 각기 다른 반사광을 만들어 낸다. 나오는 동선에서 투박한 만듦새의 청동거울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2024)를 마주한다. 오래된 청동의 녹슨 요철을 닦아낸 부분은 가공과 재가공 전후의 시간대에 놓인 금속의 중간적 상태를 드러낸다. 말끔한 평면이 되도록 인위적으로 매만진 중심부만이 현재를 거울처럼 비추어낸다. 그 평탄함의 광택으로부터 기계문명 시대의 가공된 분재들을 연상한다.
기계정원을 위한 설계에는 전복된 관점에서의 가설이 선행된다. 외양적 표피가 언제나 내재된 구조에 앞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차원의 도면으로부터 삼차원의 입체를 향하여 차오르는 김병호의 조각은 물신주의적 사회의 양면적 초상이다. 황홀하게 빛나는 수백의 점, 문명의 혹이 드러내는 탐미적 욕망은 냉소와 찬미의 태도를 동시에 표방하는 까닭에 양가적이다. 외피 아래 구조를 역방향의 순서로 탐색한다. 기계정원의 유려한 정경, 그 세속적 아름다움의 불가피한 이중성이 비롯된 경로를 추적하는 시선으로서다. 모든 가치는 현재의 지평을 근거 삼아 일어선다. 경직된 소재로부터 유연한 심미안을 발휘하고자 하는 김병호의 조각들이 각자의 빛나는 부피를 내비친다. 가공된 세계의 특수한 미학을 설득하는 동시대성의 기하학적 투영체로서 말이다.
박미란 큐레이터, 미술이론 및 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