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선포된 계엄… 장관 줄탄핵·극단시위까지 정국 격랑 [尹대통령 체포]

尹 체포까지 숨가빴던 43일

“반국가세력 척결” 45년 만에 발동
尹, 2번의 탄핵안 거쳐 직무정지
헌재 공백·공수처 수사권 논란 등
탄핵 심판 과정 혼란·갈등 계속

尹, 4차례 소환·영장 불응 끝에
6시간여 만에 ‘2차 체포’ 마무리

45년 만에 발동된 비상계엄 선포라는 초유의 사태는 43일 만에 사상 최초의 현직 대통령 체포라는 ‘오욕’의 역사로 마무리됐다. 지난해 12월3일에서 4일까지의 약 6시간 동안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진행된 비상계엄은 결국 대한민국 내 극심한 혼란의 ‘막’을 열었다. ‘막’은 15일 6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이뤄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의 윤 대통령 체포로 인해 일단 내려졌다. 윤 대통령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다 결국 헌정사상 최초의 현직 대통령 체포라는 치욕적인 기록만 남겼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12월 3일 밤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긴급 대국민 특별 담화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3일 오후 10시25분 종북과 반국가세력을 척결하고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겠다는 명분으로 전국 단위의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정치적 결사와 집회, 시위 등의 정치 활동 금지 등을 담은 포고령이 발표됐다.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여당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도 ‘12·3 비상계엄’에 반대했다. 4일 오전 1시 여당 내 일부 의원들을 포함 국회의원 190명의 찬성으로 비상계엄 해제요구안이 의결됐다. 윤 대통령은 국회 의결 3시간여가 지난 4일 오전 4시 비상계엄을 해제했다.



민주당을 비롯한 6개 야당은 4일 곧바로 내란 혐의를 포함한 윤 대통령 탄핵안을 발의했지만, 국민의힘에선 탄핵안 부결을 당론으로 정한 뒤 본회의장에 참석하지 않았다. 7일 1차 탄핵안 표결은 195명의 의원만 참석해 투표 정족수(200석)에 미달, 투표 자체가 불성립됐다. 6개 야당은 12일 다시 탄핵안을 발의했다. 그사이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국민의힘 의원들에 대한 반발이 이어졌고, 결국 국민의힘은 투표에 참여하기로 했다. 14일 탄핵안은 국회의원 204인의 찬성으로 의결됐다. 국회 의결로 윤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됐고,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을 시작했다.

 

이후에도 대한민국은 격랑을 겪었다. 대통령 탄핵심판을 심리할 헌법재판소는 3명의 재판관을 공석으로 두고 있었고, 여야는 대통령 권한대행인 한덕수 국무총리가 후임 재판관을 임명할 수 있을지를 놓고 대립했다. 한 총리가 여야 합의를 재판관 임명 전제조건으로 제시하자 민주당은 지난달 27일 대통령과 달리 총리 탄핵은 국회의원 재적 절반인 151명 이상이면 가능하다는 논리를 내세워 한 총리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두 번째 권한대행이 된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지난달 31일 헌법재판관 3명 중 2명을 임명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윤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검찰과 공수처, 경찰 등 수사기관 간 혼선이 빚어지는 듯했으나 결국 공수처와 경찰로 구성한 공조수사본부(공조본)가 전담하기로 했다. 공조본은 윤 대통령에게 3차례 출석 통보를 보냈지만 윤 대통령 측은 수령에 응하지 않았고 결국 지난달 31일 서울서부지방법원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공조본에 발부했다.

 

15일 서울 용산구 윤석열 대통령 관저에서 경찰과 공수처로 구성된 공조단이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위해 관저로 진입하고 있다. 뉴시스

윤 대통령 측은 내란죄 수사권이 없는 공수처가 영장을 신청한 것을 문제 삼아 체포영장 집행에 응하지 않았고, 윤 대통령이 한남동 사저에서 나오지 않는 동안 ‘탄핵 반대’ 시위대와 ‘탄핵 찬성’ 시위대는 길거리에서 대립했다. 해가 바뀐 2025년 1월3일 공조본의 한 차례 체포영장 집행은 대통령경호처의 물리적 저항으로 5시간30분 만에 실패로 돌아갔다. 공조본은 다시 한 번 서부지법으로부터 체포영장을 받은 뒤 이날 새벽 4시10분부터 두 번째 집행에 돌입, 6시간23분 만에 윤 대통령 체포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