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대 여성 권모씨는 지난해 말 가족과 동남아시아 지역에 여행 갔다가 크게 고생했다. 가족이 전부 장염에 걸려 여행은커녕 호텔과 병원 침대에만 누워 있었던 것이다. 길거리 음식을 잘 못 먹은 게 화근이었다. 권씨는 “곧 괜찮아질 거란 생각으로 참다가 결국 막판에 현지 병원에 갔고, 병원비만 200만원 넘게 나왔다”며 “즐거워야 할 해외여행이 악몽이 됐다”고 말했다.
임시공휴일 지정으로 길어진 설 연휴기간 해외여행을 계획한 사람들은 건강관리에 각별히 신경써야 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독감(인플루엔자)처럼 해외에서도 다양한 ‘감염 질환’이 유행하고 있는 만큼 미리 현지 상황을 숙지하고 준비한 뒤 출국해야 낭패 보는 일을 최소화할 수 있다.
HMPV는 대부분 호흡기 바이러스처럼 호흡기 비말(입에서 나오는 작은 물방울), 감염자의 분비물, 오염된 물건 접촉을 통해 전파된다. 감염 시 발열, 기침, 가래, 콧물, 코막힘 등 감기와 유사한 증세를 보이고 심한 경우 세기관지염, 폐렴 등의 감염을 일으킬 수 있다. 예방백신이나 치료제가 따로 없어서 개인위생을 통한 예방이 최고다.
엄중식 가천대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HMPV는 다양한 호흡기 바이러스 중 하나”라며 “코로나19 경험 때문에 중국발 감염병이라는 심리적인 이유로 공포가 크지만 감염력이나 치명률 등에서 특별히 우려할 만한 것은 없다”고 설명했다. 엄 교수는 “다만 독감 등 호흡기질환이 다 그렇듯 어린이와 노약자, 면역저하자 등 취약계층은 주의해야 한다”며 “감기 수준이라고 쉽게 생각하는 것도 경계해야 하지만 과도한 우려를 확산할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30대 아빠와 1세 미만 영아 자녀 ‘홍역 구멍’
오히려 해외여행 시 더 경계해야 할 질병은 홍역이다. 홍역은 2급 법정 감염병이다. 홍역은 전파력이 매우 강한 호흡기질환이다. 감염력은 보통 감염자 한 명이 평균적으로 전파할 수 있는 감염자 수를 의미하는 ‘R0(기본 재생산수)’로 측정하는데, 홍역의 R0는 12∼18이다. 이는 백일해(12∼17)와 비슷하고, 코로나19 초기 변이(2∼3), 오미크론 변이(8∼10) 수준보다 훨씬 높다.
WHO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적으로 약 31만명의 홍역 환자가 발생했다. 유럽(10만4849명)과 중동(8만8748명), 동남아시아(3만2838명) 등에서 많이 나왔다. 홍역은 백신(MMR·홍역·유행성이하선염·풍진) 접종으로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문제는 백신 접종 전 영유아와 1970∼1990년대에 태어난 30∼50대다. 1968년 이전 출생자는 백신이 아니라 실제 감염을 통해 홍역에 대한 면역이 대부분 형성됐다.
현재 영유아 국가 필수예방접종으로 MMR 접종이 시작된 것은 1983년이고, 2회 접종은 1997년에야 이뤄졌다. 1968∼1997년 태어난 사람들의 집단면역이 비는 셈이다. 유아의 경우 12~15개월에 한 번, 4~6살에 추가 접종하기 때문에 만 1세 이전 유아의 경우 해외여행 시 홍역에 노출될 수 있다.
엄 교수는 “홍역 등에 대한 영유아 국가 필수예방접종은 만 4세 정도가 돼야 마무리된다”며 “아직 나이가 어려 백신 접종을 마치지 않은 영유아가 감염병 유행 지역으로 여행가는 건 피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이어 “불가피하게 가야 할 경우 최소한 1차 접종이라도 마친 뒤로 여행 일정을 미루거나 현지에서 위생에 철저히 신경써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외에도 동남아 여행 시 ‘뎅기열’ 주의는 기본이다. 이집트숲모기가 주요 매개체인 뎅기열은 매년 1억명 이상의 환자가 나오는데 백신과 치료제가 없다. 치명률은 보통 0.1∼2% 수준이고, 대부분은 완전히 회복하지만 뎅기출혈열, 급성 뎅기열 쇼크 증후군 등의 합병증이 나타날 경우 치명률은 20∼50%까지 올라갈 수 있다.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모기 기피제 등을 챙기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