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비상입법기구 쪽지, 내가 썼나 김용현이 썼나 가물가물” [尹대통령 구속]

尹 45분 직접 변론에도 구속 왜

판사 질문에 “의도 없어” 취지 대답
군·경 수뇌부 1500쪽 분량 증언서
법원,尹 수괴 혐의 소명됐다 판단
압색·소환·영장 비협조도 ‘결정타’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

 

현직 대통령인 윤석열 대통령의 ‘셀프 변론’에도 법원은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 수사가 필요하다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손을 들어주며 이렇게 판단했다. 법원이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한 데는 윤 대통령의 내란 수괴(우두머리) 혐의가 소명됐고,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공수처 관계자는 구속영장이 발부된 19일 “구속영장 발부의 전제 조건은 범죄가 소명됐다는 것”이라며 “구속영장 발부 결과를 납득할 수 없다면 사법시스템이 정하는 불복 절차나 구제 절차를 따르면 된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대통령실사진기자단

◆尹 ‘45분 셀프 변론’ 안 먹혀

 

윤 대통령은 변호인 8명과 함께 현직 대통령 신분으로는 처음으로 직접 법원의 구속심사에 출석했지만 구속을 막지는 못했다. 윤 대통령은 약 45분간 직접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 과정에 대한 입장을 설명하며 스스로를 변론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윤 대통령 측은 비상계엄은 대통령 고유의 통치행위로서 사법심사의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은 거대 야당(더불어민주당)의 예산안 단독 처리 등으로 국정이 마비된 국가비상사태였고, 민주당의 패악을 알리는 경고성 계엄이었다고 주장해왔다.

 

윤 대통령은 또 비상입법기구 관련 예산을 마련하라는 쪽지 내용과 관련해 영장심사를 맡은 차은경 서부지법 부장판사가 비상입법기구를 창설할 의도가 있었는지 묻자,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작성했는지 내가 쓴 것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비상입법기구를 제대로 할 생각은 없었다”는 취지로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8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서 입구를 막은 버스가 잠시 빠지며 문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내란 우두머리’ 혐의 소명

 

법조계에서는 사안이 중대하고, 윤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가 일정 부분 소명됐다는 전제하에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하는 내용이 담긴 위헌·위법한 내용의 포고령을 발표하고, 무장한 계엄군을 투입해 국회를 봉쇄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공수처는 국헌 문란을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내란 혐의를 윤 대통령에게 적용할 수 있다고 보고 윤 대통령의 구속영장에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적시했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언론에 보도된 것만으로도 상당히 중대한 사안이라는 게 인지가 되는 상황”이라며 “(구속영장 발부로) 혐의가 어느 정도 소명됐다고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은 윤 대통령을 ‘내란 우두머리’로 지목한 여인형 국군 방첩사령관, 조지호 경찰청장 등 군?경찰 지휘부 등의 진술을 바탕으로 윤 대통령의 혐의를 판단했다. 앞서 공수처는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구속기소한 김 전 장관, 여 사령관, 조 청장 등 핵심 관련자 10명의 수사 기록 1500쪽 이상을 넘겨 받아 이를 150쪽 분량의 구속영장에 반영했다. 이들은 검찰 조사에서 윤 대통령이 “국회의원들을 다 체포하라”,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 등의 지시를 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관저 요새화한 尹… 증거인멸 우려

 

윤 대통령이 수사기관의 압수수색과 소환 통보, 체포영장 집행 등에 협조하지 않은 점도 법원이 증거인멸 우려를 판단하는 데 결정적 근거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체포 직전 ‘군사상 비밀을 요하는 장소는 그 책임자의 승낙 없이 압수 또는 수색할 수 없다’는 형사소송법상 압수수색 제한 조항을 근거로 대통령실과 한남동 관저 등 경호구역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부했다. 공수처와 경찰이 꾸린 공조수사본부(공조본)의 3차례 소환 통보에도 불응했고 3일 공조본의 1차 체포영장 집행에도 협조하지 않았다. 체포 후에 이뤄진 공수처 조사에서 진술 거부권을 행사하거나 조사에 불응하는 등 수사에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점 등도 증거인멸 우려 사유로 제시됐다.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윤 대통령이 수사를 받으러 나오라는 요구에도 관저를 ‘요새화’하며 그 안에서 나오지 않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법원도 ‘풀어주면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라고 해석했다.

 

한편 법조계에서는 윤 대통령이 공수처가 서부지법에 체포영장을 청구해 발부받은 것을 두고 관할권을 문제 삼다 결국 서울중앙지법의 체포적부심 기각과 서부지법 구속영장 발부로 구속된 만큼, 앞으로는 관할권을 문제 삼지 못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윤 대통령 측 윤갑근 변호사는 이날 구속적부심을 중앙지법에 청구할지, 서부지법에 청구할지를 묻는 질문에 “결정된 바 없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