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현지시간) 치러진 제47대 미국 대통령 취임식은 주인공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위한 TV쇼처럼 진행됐다. 영하의 추위를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워싱턴 연방의회 의사당과 캐피털원아레나 등 실내로 주요 행사 장소가 변경됐지만 한때 TV 리얼리티쇼의 스타였던 트럼프 대통령은 주목받기에 유리한 실내 공간에서 파격행보와 말폭탄을 쏟아내며 특유의 엔터테이너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기존 취임식 전통에 맞춰 진행된 오전 행사는 비교적 차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북쪽 세인트존스 성공회 교회 예배와 조 바이든 전 대통령과의 백악관 차담, 낮 12시를 전후해 미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진행된 취임 선서와 취임연설 등을 예정된 순서에 따라 침착하게 따라갔다. 취임선서에서는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이 1861년 16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선서할 때 사용했던 성경책과 1953년 트럼프 대통령이 교회학교 졸업 시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받은 성경책이 사용됐다. 다만 오른손을 들어올려 대통령의 의무를 맹세하는 선서 과정에서 왼손을 성경에 얹지 않고 아래로 내린 모습이 포착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취임식을 마친 뒤 의사당 중앙홀(로툰다) 공간이 부족해 현장에 입장하지 못한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을 위해 취임식 장면을 실시간으로 생중계했던 의사당 내 ‘노예해방홀’을 방문하면서 그의 파격은 시작됐다. 이 자리에서 30분간 제2의 취임 연설을 하면서 2020년 대선에 대해 “완전히 조작됐다”며 “우리는 수백만표를 더 받았다”고 결과를 재차 부정하는 등 취임사에서 미처 하지 못했던 ‘속내’를 쏟아냈다. 4년 전 대선 패배 뒤 지지자들이 의사당에 몰려와 폭동을 벌이며 외쳤던 주장들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폭동 장소에서 이 주장을 다시 외치며 승리를 선언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워싱턴 월터 E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사령관 무도회에 참석했다. 검정색 연회복에 나비 넥타이를 맨 트럼프 대통령은 화이트에 블랙 포인트가 들어간 드레스를 입은 부인 멜라니아 여사의 손을 꼭 잡고 해병대 군악대의 연주에 맞춰 무대에 올라 함께 춤을 췄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컨벤션센터 내 다른 장소에서 열린 자유의 취임 무도회에도 참석해 공화국 전투찬가에 맞춰 춤을 췄다. 취임식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가족들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첫 번째 취임식 때 10살 꼬마였던 배런이 206㎝ 거구의 18살 대학 신입생으로 ‘폭풍 성장’해 참석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날 취임식 일정에서는 트럼프 대통령뿐 아니라 대중들에게 친숙한 거대기술(빅테크) 기업들의 수장들도 큰 관심을 받았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자문기구인 정부효율부(DOGE) 수장으로 지명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물론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팀 쿡 애플 CEO,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립자, 순다르 피차이 구글 모회사 알파벳 CEO 등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눈도장’을 찍기 위해 취임식 주요 일정에 대거 참석했다. 블룸버그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선서를 할 때 그를 둘러싸고 있던 인사들의 총 자산이 1조3000억달러(1871조원)에 달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빅테크 인사 중 가장 주목받은 인물은 새 정부의 최대 실세로 떠오른 머스크 CEO다. 머스크는 이날 캐피털원아레나에서 열린 취임 축하 행사에서 트럼프의 등장을 앞두고 연설하는 도중 파시스트 경례를 떠올리는 동작을 취해 논란을 만들기도 했다. 미국에서 반유대주의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이는 반명예훼손연맹(ADL)은 이날 성명을 통해 머스크가 나치식 경례가 아닌 열정의 순간에 어색한 동작을 취한 것 같다고 밝혔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이에 대한 비난이 확산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