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200주년 맞은 ‘오징어게임’ 속 그 작곡가 〈요한 슈트라우스 2세〉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작곡
패전 오스트리아 국민 위로
당시 베토벤 뛰어넘는 인기
새해 여는 음악으로도 각광

‘오징어게임 시즌2’에서 가장 강렬하게 들렸던 음악은 역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였다. 생사를 오가는 주인공들과 참 동떨어진 음악이다. 우아하고 느린 음악은 이들의 상황과 참 대조적으로 들렸다. 드라마의 시즌1부터 쭉 사용하고 있는 음악이기 때문에 시즌1에 이어 이들이 다시 게임 안에 들어와 있음을 청각적으로 알려주는 장치이기도 했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를 작곡한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오스트리아의 작곡가다. 여기서 ‘2세’라고 붙이는 이유는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 역시 위대한 작곡가였기 때문이다.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가 작곡한 대표적인 작품이 ‘라데츠키 행진곡’이다. 신년음악회 때 박수를 치며 따라 연주하는 바로 그 작품이다. 그의 친동생 요제프 슈트라우스 역시 오스트리아에서 왈츠와 폴카를 작곡하며 유명세를 떨쳤다. 이 요한 슈트라우스 가문이 인류 전체 왈츠의 상당한 지분이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이렇게 긴 시간이 흘러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가 넷플릭스 최고의 화제작인 ‘오징어게임’에 사용될 줄 그들은 알았을까.

허명현 음악칼럼니스트

왈츠는 오스트리아의 전통 민속춤인 렌틀러에서 유래했다. 3박자의 춤곡이다. 춤곡이라 가벼운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사실 왈츠엔 이들의 삶과 문화가 담겨 있다. 일상생활 속 이야기가 춤을 타고 흐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요제프 슈트라우스가 작곡한 ‘편집부에게’는 당시 신문의 편집부가 독자 편지란을 성의 없게 다루는 것을 비꼬는 폴카다. 스타카토로 몰아치는 대목이 독자들의 불평을 묘사한다. 시민들의 삶과 얼마나 맞닿은 작품인지 알 수 있다.



오징어게임에도 사용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역시 같은 맥락에서 작곡되었다. 이 작품이 작곡된 시기는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사이에서 전쟁이 발생한 직후다. 1866년 오스트리아는 결국 전쟁에서 패배했고, 오스트리아 국민은 집단적인 우울함에 빠졌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국민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싶었는데, 그래서 그가 선택한 소재가 도나우강이었다. 도나우강은 오스트리아 빈을 관통하는 강이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에게도 도나우강은 그들의 자랑이자 문화다. 마찬가지로 누군가 우리나라의 자랑인 한강을 누군가 음악으로 만든다면 대단한 감격이 차오르지 않을까.

음악은 도나우강과 그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음악으로 풀어내며 그들의 마음을 위로했다. 또 그들이 다시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런 이유로 오스트리아에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가 두 번째 애국가나 다름없는 음악으로 인정받는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지휘자 프란츠 벨저 뫼스트는 빈의 왈츠를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 ‘단지 가벼운 춤곡이 아니라, 우리가 보존해야 할 문화와 정신.’ 그는 2022년 11월 빈 필하모닉과 한국을 찾아 요제프 슈트라우스의 ‘자이셀른(검은방울새) 왈츠’를 앙코르로 연주했다. 연주 중간에 진짜로 새소리가 나며, 빈의 숲을 떠올리게 만드는 작품이다.

이처럼 대중과 밀접한 음악인 왈츠는 당시에도 큰 인기를 누렸다. 작곡가 베토벤이나 모차르트도 오스트리아에선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인기를 따라가지 못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크게 흥행했고, 돈도 원 없이 벌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말 그대로 슈퍼스타였다. 지금도 빈 시내를 산책하면 심심치 않게 만나볼 수 있는 동상이 바로 요한 슈트라우스 2세고, 빈 국제공항에 내려서 처음 만나는 카페도 요한 슈트라우스 카페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는 신년을 여는 음악이기도 하다. 매년 빈 필하모닉이 여는 신년음악회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앙코르곡이다. 지휘자와 단원들이 청중들을 향해 새해 인사말을 건네고, 바로 이어지는 작품이다. 근심 걱정 없는 평화로운 새해를 열고 싶은 바람이 곧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인 셈이다. 올해도 리카르도 무티가 지휘한 빈 필하모닉이 이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로 새해를 열었다.

아 참 올해 연주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는 조금 더 특별하다. 2025년은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태어난 지 200주년이 되는 해다.

 

허명현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