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귀금속의 성지라 불리는 서울 종로구 종로3가. 30여개의 귀금속 매장이 입점해 있는 주얼리 상가에서는 지폐계수기 돌아가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상가는 오전 시간임에도 금을 팔아 5만원 뭉칫돈을 받아가는 사람, 뒤늦게라도 ‘금풍(金風)’에 올라타려고 시세를 알아보는 사람으로 북적였다. 한국의 ‘골드러시(금이 발견된 지역에 사람이 몰리는 현상)’다.
이곳에서 10년째 영업 중이라는 문모(44)씨는 “설날 이후로 금 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관련 뉴스가 쏟아지니 고점이라 생각해 금을 팔려는 사람과 이제라도 사려는 사람이 몰리고 있다”며 “평소보다 방문객이 2∼3배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2시 기준 한국금거래소의 순금 구매 시세는 58만7000원. 전날(59만2000원)보다 0.85%(5000원) 하락한 금액이지만 여전히 연초(53만3000원)보다 10% 이상 오른 가격이다. 전례 없던 60만원대 진입도 머지않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국제 금 시세 역시 오름세다. 뉴욕상업거래소(COMEX)에 따르면 4월 인도분 금 선물 가격은 온스당 2934.4달러에 거래를 마치면서 사상 최초로 2900달러를 넘어섰다. 연초 대비 10% 이상, 전년 대비 무려 40% 넘게 상승한 가격이다.
이처럼 너도나도 금 사재기에 뛰어들자 ‘금 품귀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종로3가에서 15년째 금 도매업을 하고 있는 A(40대)씨는 “돈이 있어도 실물 금을 구매하려면 최소 3일, 최대 일주일을 기다려야만 한다”며 “요새 방문객뿐 아니라 전화 상담도 쏟아지니 금값 광풍이 체감된다”고 말했다.
금값 상승에 시중은행 골드바 판매는 급증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이날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골드바 판매액은 이달 1일부터 11일까지 총 242억7017만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 79억6326만원의 약 3배다. 전월 동기(1월1~11일) 124억2380만원과 비교해도 2배 가까이 뛰었다.
금의 인기가 치솟고 있지만 정작 귀금속을 취급하는 소상공인들의 얼굴은 밝지 않다. 손님들이 찾는 것은 오직 투자에 최적화된 ‘골드바’일 뿐 세공비가 들어가는 목걸이나 반지 등 귀금속 판매율은 급감한 까닭이다. 소규모 주얼리 가게를 운영 중인 이모(52)씨는 “3년 전 14K 1돈 가격이 19만원이었는데 현재 37만5000원으로 당시 순금값”이라며 “우리는 장신구 판매가 메인인데 가격이 이렇게 뛰어버리니 판매가 거의 반 토막 났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현물 금을 구하지 못한 자본이 금 관련 투자 상품으로 몰리며 가격 거품을 만들어내는 것도 문제다. 국내 금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인 ‘ACE KRX 금현물’ ETF는 올해 들어 25.56% 올랐다. 하지만 현물 금 시세를 상회하는 수치다. KRX 금현물을 운영 중인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금 수요가 공급을 웃돌며 금 현물과 ETF 가격 간 괴리가 10% 이상 벌어졌다”며 “6% 이상 벌어지면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이를 공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교수(경제학)는 “앞으로 금값 향방은 예측하기가 정말 어렵다”며 “금이라는 것은 안전자산으로 투자하는 상품인데 이미 많이 오른 상황이고 3000달러까지 오른다는 이야기를 맹목적으로 믿으면 위험하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