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 충격으로 정부는 AI 기본법 보완·공공데이터 활용, 인재 양성 등 다각적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염재호 국가인공지능위원회 부위원장(장관급)은 최근 세계일보 인터뷰에서 “효율적 학습·압축 기술과 ‘소버린 AI’ 개발이 핵심”이라며 민간 주도 혁신 지원과 법령 정비 필요성을 강조했다. 염 부위원장은 지금 우리가 겪는 AI 위협은 극복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는 “우리는 원자력의 도움을 받고 있고, 자동차는 브레이크 시스템을 개발해 제어한다”며 “AI도 마찬가지로 기술로 위험을 통제할 수 있다”고 했다.
염 부위원장은 인터뷰 내내 ‘미래’라는 단어를 언급하며 “AI 기술 시대에 맞게 사회 전반의 체계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국가AI위원회에서 신경써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AI문화”라며 “사람들이 AI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상황은 어떤가.
“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 특히 의료 데이터가 그렇다. 미국 스탠퍼드 컴퓨터과학과 교수들과 이야기해 보니, 한국의 의료 데이터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데이터는 그 어떤 나라도 따라올 수 없는 귀중한 자산이다. 우리 국민들이 병원을 자주 방문하다 보니 축적된 데이터가 엄청나다. 하지만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활용이 어려운 이유가 있을 텐데.
“재판 데이터를 예로 들어보겠다. 현재 판례는 변호사만 볼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들지만, 그 이면에는 법조계의 조직이기주의 같은 것이 있다. 의료계도 마찬가지다. 병원들이 데이터 공개를 꺼리는 것은 오진이나 수익 구조가 드러날 것을 걱정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런 데이터는 모두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공공재다. 개인정보를 보호하면서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지난해 12월 AI 기본법이 통과됐는데.
“기본법은 통과됐지만 아직 모호한 부분이 많다. 특히 ‘고위험 AI’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기업들이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 움직이기 어려워하고 있다. 법 전문가들과 함께 검토해 보니 하위법령에서 구체화해야 할 부분이 많다. 정부가 모든 것을 할 순 없다. AI 관련 활동은 기업이나 민간에서 주도해야 한다. 정부는 무엇이 힘든지 파악하고 도와주는 입장이어야 한다. 산업정책처럼 등대 역할을 하면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소버린 AI’에 대한 의견은.
“우리나라는 매우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아래아한글(한글 워드프로세서)을 아직 쓰고, 네이버와 카카오 같은 자체 플랫폼이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소버린 AI가 가능하다. 챗GPT 같은 범용 AI만 생각하지 말고, 특화된 AI를 발전시켜야 한다. 예를 들어 대형 로펌들은 이미 자체 AI를 개발해 활용하고 있다. 변호사업계에는 반대 의견이 많지만 10대 로펌은 거의 다 개발돼 있다. 언론사도 마찬가지다. 자사의 데이터로 학습시킨 AI를 활용할 수 있다.”
―한국의 AI 인재 양성 문제는 어떤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베이징대는 작년에 공대생을 40% 늘렸는데, 우리는 수도권정비계획법 때문에 정원을 늘리지 못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에서 연구개발 투자가 가장 많은 나라가 한국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4.3%로 1위이고, 총액으로는 30조원 정도로 영국을 넘어 5위 수준이다. 이 중 3000억원만 AI 인재 양성에 투자해도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다.”
―인력 양성을 위한 대안은.
“이른바 ‘한국형 탈피오트’ 프로그램을 제안한다. 이스라엘의 탈피오트처럼 수학, 물리를 잘하는 학생들을 뽑아 AI 개발에 투입하는 것이다. 현재 고려대 사이버국방학과가 좋은 예다. 높은 성적의 학생들이 지원하는데, 그 이유는 4년 동안 전액 장학금을 받고, 7년 장교 근무를 보장받기 때문이다. AI 분야에서도 이런 시스템이 필요하다. 1000명에게 4년 장학금을 준다고 가정해 보자. 1인당 연간 1000만원이면 1000명은 100억원이다. 생활비까지 지원하고 군대도 면제해 준다면, 의대 대신 AI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늘어날 것이다. 1만명을 지원해도 1000억원이면 충분하다.”
―교육 시스템의 변화도 필요할 것 같다.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20세기는 기계문명과 대량생산 체제가 지배했다. 일을 잘게 쪼개서 하나의 전공만 잘하면 30년을 먹고살 수 있었다. 하지만 21세기는 다르다. 정형화된 지식은 AI와 로봇이 다 하게 될 것이다. 더 중요한 건 생각하는 능력, 문제해결 능력이다. 스페셜리스트가 아닌 모든 것을 풀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시대다. 하지만 우리 대학은 아직도 전공 중심으로만 가르치고 있다.”
―기업의 역할은.
“기업도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최정우 포스코그룹 전 회장을 만났는데, 사내 AI 경진대회에서 1등을 한 직원이 포항제철공고 출신이라고 했다. 코세라(미국 온라인 교육 플랫폼)에서 300달러만 내면 스탠퍼드대 강의를 집에서 들을 수 있는 시대다. 앞으로는 4년제 대학 졸업장이 10년도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 인맥도 중요하지 않다. 자기 실력이 있어야 한다. 19세기 말에 과거 급제해서 양반이 된 것처럼, 대학 졸업장을 자랑하는 건 시대착오적이다.”
―AI 시대의 정부 조직 개편 방향은.
“국가정보원만 해도 단순히 스파이를 잡는 게 아니라, 경제안보 차원의 정보 분석이 필요하다. 요소수 사태 때처럼 어떤 물자가 어디서 생산되고, 어느 채널로 수입되는지 분석해야 한다. 일본의 경우 2030년까지의 계획을 보면 우주, 인공위성 등에 집중하고 있다. 미국 해군, 일본 해상자위대가 추진하는 10년 프로젝트 중 하나가 우주 태양광 발전소다. 지상의 태양광은 효율이 20%이지만 우주에서는 90%까지 올라간다. 이런 미래 기술에 대한 준비도 필요하다.”
―AI 시대를 맞는 한국 사회에 조언을 한다면.
“미래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1868년 일본이 흑선을 보고 문을 열었듯이, 우리도 AI라는 새로운 문명을 받아들여야 한다. 구글 딥마인드의 AI ‘알파폴드’가 단백질 구조를 풀어낸 것처럼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혁신이 올 것이다. 자동차가 처음 나왔을 때 마부들의 일자리를 걱정했지만, 운전기사라는 새로운 직업이 더 많이 생겼다. 1920년대 미국의 자동차가 약 100만대였는데 1929년에는 30배로 늘었고, 일자리도 그만큼 늘었다. AI 시대에도 새로운 직업이 생기고, 일의 형태가 바뀔 것이다. 우리는 이런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한다.”
소버린(Sovereign·자주적인) AI=자체 인프라·데이터·인력 및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사용하여 AI를 구축하는 국가의 역량을 의미
고위험 AI=국방·의료·교통·금융분야 등 인간의 인간의 생명, 신체의 안전 및 기본권의 보호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AI 시스템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