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이 무엇인가. 과도한 권한이 대통령에게 집중됨으로써 제동장치 없이 온 국민을 나락에 빠트릴 수 있는 제도의 허점을 고치자는 것이 현재 국민 요구 아닌가. 대한민국 지도자라면 개헌과 정치개혁에 대한 비전과 답을 내놔야 한다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요구한다.”
조기 대선이 가시화하며 민주당 비명(비이재명)계 대권 주자로 부상한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25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개헌·정치개혁과 관련해 전날 이 대표와의 회동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김 전 총리의 개헌·정치개혁에 대한 입장표명 요구에 이 대표는 “지금은 내란 정국의 최종 종결, 즉 탄핵에 집중할 때”라는 기존 주장을 반복해 공방, 논쟁만 벌였다는 것이다.
김 전 총리는 개헌논의 자제론에 대해 “개헌 논의가 탄핵에 영향을 준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며 “탄핵 이후 대한민국이 어디로 갈지 국민의 답답증, 궁금증에 정치지도자라면 답을 줘야 할 때”라고 ‘포스트 탄핵’ 시대를 대비한 비전 제시를 강조했다.
―이 대표의 ‘민주당은 중도보수당’론을 어떻게 보나.
“민주당 정체성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지난 역사 위에서 대변해야 할 중산층과 서민 목소리가 어우러져 형성됐다. 그 점에서 진보적 영역을 담당했다. 보수정당이라고 지칭할 부분이 보이지 않는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생산적 복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람 사는 세상’, 문재인 전 대통령의 진보적 가치 중심의 국정운영을 볼 때 근본적 정체성에 관한 문제인만큼 당내 충분한 토론, 전문가와의 숙의 과정이 있어야 변화도 가능할 것 아닌가. 그런 점에서 성급했다.”
―이 대표 사과가 필요하나.
“(24일 회동에서) 이 대표도 일부 표현에서 오해를 받을 만하다고 시인을 했다. (친명계 좌장 격인) 정성호 의원 전언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세력이 완전히 극우로 몰려가 비어 있는 보수정치의 지형을 우리(민주당)가 대변하겠다는 취지라고 하나, 접근법은 달라야 한다. 이 대표가 당내 비판을 알 테니 적절한 조치 바란다.”
―이 대표의 실용주의에 대해 언행일치가 중요하다거나 갈팡질팡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과거 DJ나 노 전 대통령도 대선을 앞두고 현안 해결을 고민할 때 이념에 집착하지는 않았다. 유력 대선 후보인 이 대표도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다. 다만 거듭 말하지만 당의 정체성, 기본 가치에 관한 부분을 바꾸려면 충분한 당내 토론과 숙의 과정이 있어야 국민이 납득하지 않겠나. 그래야 단순히 표를 얻기 위한 말이 아니라, ‘당이 이런 고민을 통해 이것을 선택했구나’ 하고 이해할 수 있다.”
―본인의 이념적 좌표는.
“과거 국회의원 (성향) 척도를 조사할 때 왕진보가 0이고 왕보수가 10이라고 하면, 나는 4.1에서 5.0 사이에서 왔다 갔다 했다. 그렇다면 약간 중도에서 중도진보의 포지션인 것 같다.”
―당내 통합을 위한 아이디어는.
“통합의 구체적 방안은 이 대표나 당 지도부가 고민하겠지만 가장 간단한 것은 당내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는 것 자체가 거북스러운 분위기를 빨리 풀어내야 한다. 자유로운 의사가 표출되고 당 운영에도 반영되는 다양성, 민주성, 포용성을 보일 때 민주당이 국민적 지지를 받고 경쟁력도 올라가 튼튼한 플랫폼이 되지 않겠는가.”
―국가와 국민을 충격에 빠트린 12·3 비상계엄 사태를 통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느낀 리더십은.
“우리 역사에 찾는다면 외환 위기를 극복한 DJ의 리더십이다. 대한민국의 정치적 저변을 확대하는 DJP(김대중·김종필)연합이라는 일종의 연대를 했다. 경쟁 후보자를 도운 분도 등용했다. 기억나나? 취임식 땐 장밋빛 미래를 말하지 않았다. 모든 잘못은 정치인이 하고 그 고통을 국민이 겪는 상황에 대해 정말 죄송하다며 울먹였다. 결국 국민 마음을 움직여 외환 위기를 극복했다. 국민은 통합과 공존, 전진의 리더십을 기대한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의 외연을 이념적·지역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나.
“대한민국 정치지형 자체가 어느 한쪽의 일방적 우위가 아니다. 항상 51대 49로 팽팽하다. 역대 대선 결과를 보면 100만표차 이내서 승부 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중간층, 중도층을 설득해야 하는 이유다. 지역적으로는 우리 당의 취약지 TK와 PK(부산·울산·경남)에서 지지율을 더 올려야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
―2016년 총선에서 꺾은 김문수 장관이 여권 대선지지율 1위다. 어떻게 평가하고, 당시 승리 배경은 뭔가.
“대선 승패는 결국 중도 확장 여부에 달려있다. 김 장관은 현재 강경보수 입장으로 많이 가 있다. 정말 범보수 후보가 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20대 총선에서는 상대 후보 비난을 일절 안 하고 내가 당선되면 대구에 어떤 기분 좋은 변화가 오느냐에 집중했다. 끈질기게 호소하고 설득하고 마음의 동의를 얻는 과정이 정치다.”
―찬탄(탄핵찬성)·반탄(탄핵반대) 집회에서처럼 이념, 진영 갈등이 증폭하고 있다. 원인이 무엇인가.
“정치제도의 문제가 크다고 본다. 한 표라도 이기면 모든 것을 취하고, 한 표라도 지면 기회 자체가 봉쇄되는 승자독식의 정치가 쌓이다 보니 대결 정치가 됐다. 국민의 정치적 목소리는 다양하지만 자신들을 대표하는 정당은 둘밖에 없다. 30년 이상 좌절과 분노가 쌓이니 적대적, 증오적 상황을 만들고 양쪽이 극단화됐다. 이게 민주주의에서는 제일 위험한 상태다.”
―현 소선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꾸자는 이야기인가.
“(지역구는) 중대선거구로 가고, 비례대표를 획기적으로 늘리는 방향으로(생각한다). 민주주의 원칙을 지키는 성숙한 시민에 걸맞은 정치문화가 이제 자리 잡아야 한다. 그다음에 승자독식의 선거제도를 바꿔 여러 정치적 목소리가 국회 내에 반영이 되는 다당제가 가능하도록 제도를 바꿔야 된다.”
―구체적 개헌 방향은 무엇인가. 현 헌법에도 내각책임제적, 이원집정부제적 요소가 있다.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 분산이 제일 급하다. 예를 들어 지금은 발령 후 국회에 통보만 하도록 되어 있는 계엄령을 국회 동의 없이는 못 하도록 하면 된다. 또 대통령이 모든 권한을 행사하는 임명권도 적절히 국회로(이관하고), 총리도 국회 추천을 통해 국회에서 선출한다든지 하고, 감사권도 국회로 넘겨야 한다. 아니 (대통령) 자기가 행정 하면서 자기가 감사하면 어떡하나.”
―조기 대선 가능성이 거론된다. 대권 도전 선언은 언제쯤.
“아직 탄핵 국면도 마무리 안 된 상태다. (당내에서는) 개헌 이야기도 하지 말라고 하는데 (현시점에서) 대선 이야기 꺼내서 되겠는가.”
―대권 주자로서 강점은.
“대선 주자라기보다는 정치인으로서, (정치인) 본연의 역할이기도 하지만, 갈등 조정과 통합에 장점이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오해나 비난도 받을 수도 있다. 과거 경험을 보면 결국 양보하지 않으면 해법을 찾을 수 없다. 한쪽이 다른 쪽을 무리하게 이기겠다고 하면 정치적 비극이 오기 때문에 막아야 한다. 이런 역할을 하겠다. 공동체가 위기 때 양보와 합의를 통해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찾겠다.”
-그렇다면 약점은.
“내 나름대로 원칙을 지키는 정치를 하다 보니 패거리를 많이 만들지 못했다. 주류, 패거리를 만들지 못한 것. 그런 것이 힘든 정치 역정을 겪게 한 것 같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1957년 경북 상주 출생 ●경북고 ●서울대 정치학과 ●16·17·18대 국회의원(경기 군포) ●20대 국회의원(대구 수성갑) ●행정안전부 장관 ●국무총리 ●22대 국회의원 총선 더불어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