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 성공률 53.12%(17/32), 리시브 효율 60%(9/15), 디그 성공률 93.75%(15/16). 공식 은퇴를 선언한 ‘배구여제’ 김연경이 25일 인천 IBK기업은행전에서 기록한 비율 스탯이다.
통상적으로 프로 선수들의 은퇴는 더 이상 자신의 기량이 리그에서 통하지 않을 때 이뤄진다. 더 이상 체력이 예전 같지 않고, 예전엔 쉽게 되던 게 되지 않는 등 한계를 체감했을 때 마침내 현역에서 물러나는 것을 밝히곤 한다.
위의 기록에서 볼 수 있듯, 김연경은 다르다. 1988년 2월생으로 만 37세가 됐지만, 여전히 최고다. 운동 능력은 전성기 시절에 비해 다소 떨어졌어도 노련미로 이를 충분히 커버한다. 득점 6위(566점), 공격종합 2위(45.87%)에 오르며 여전한 공격 생산력을 보여주고 있다.
공격에서 김연경만큼 때리는 선수는 꽤 있을 수 있다. 김연경을 ‘배구여제’로 만들어준 유니크함은 바로 수비력이다. 아웃사이드 히터인 김연경의 수비력은 포지션 대비 동급 최강이다. 1m92의 장신이면 수비력이 다소 떨어져야 정상인데, 25일 기록에서 보여주듯 리시브 효율 60%에 디그 성공률 90% 이상을 찍어주는 게 김연경이다. 우리는 이런 선수를 보낼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김연경 팬들은 전성기에 버금가는 그의 활약과 코트 위에서 보여주는 특유의 카리스마를 지켜보며 2AM의 노래 제목 ‘죽어도 못 보내’가 떠오르는 요즘일테다.
김연경은 25일 비율스탯뿐만 아니라 누적스탯도 훌륭했다. 블로킹 1개, 서브득점 2개 포함 팀내 최다인 20점을 몰아쳤다. 코트 위 리더 김연경의 맹활약 속에서 흥국생명은 세트 스코어 3-1 승리를 거뒀다.
이날 승리로 11연승을 달린 흥국생명은 정규리그 1위 확정에 매직넘버를 ‘승점 1’만을 남겼다. 승점 76(26승5패)가 되면서 2위 정관장(승점 58, 21승9패)와의 격차는 승점 18 차이로 벌어졌다. 정관장이 26일 GS칼텍스전을 시작으로 6라운드 전 경기를 승점 3을 챙기며 승리하면 승점 76, 27승9패가 된다. 흥국생명은 남은 5경기에서 승점 1만 챙기면 되는 것이다.
빠르면 26일에도 흥국생명이 자신들의 힘을 굳이 들이지 않고도 챔피언결정전 직행 티켓을 손에 쥘 수 있다. 정관장이 GS칼텍스에 패하거나 승리하더라도 5세트 경기가 펼쳐져 승점 1을 잃으면 흥국생명들은 숙소에서 축포를 터뜨릴 수 있다.
정관장이 26일에 승점 3을 온전히 챙기면 흥국생명의 정규리그 1위 확정은 다음달 1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리는 정관장과의 6라운드 경기로 넘어간다. 이날 경기에서 승리도 필요없다. 두 세트만 따내면 2-3으로 패하더라도 정규리그 1위가 될 수 있다.
25일 IBK기업은행전은 김연경에게 더욱 특별한 경기였다. 자신의 생일인 2월26일을 하루 앞두고 열렸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이제 코트 위에 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그녀를 보기위해 매경기 구름관중이 몰리고 있는데, 생일까지 앞둔 김연경을 보기 위해 삼산월드체육관의 올 시즌 최다인 6067명의 만원 관중이 몰렸다.
경기를 승리한 뒤 팬들은 김연경에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는 깜짝 이벤트를 펼치기도 했다. 김연경은 쑥스럽게 웃다가 손을 흔들며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경기 후 만난 김연경은 만감이 교차한 듯했다. 그는 “오늘 경기를 앞두고 ‘만 36세에 치르는 마지막 경기’라는 생각이 들더라”라며 “슬픈 감정에 사로잡히기 싫어서 은퇴 생각을 안 하려고 노력하는데, 오늘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처럼 많은 팬이 생일 축하를 해준 건 처음이다. 팬들이 끝까지 남아 생일 노래를 불러줬는데, 잊지 못할 하루가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녀의 생일인 26일엔 흥국생명은 선수단 휴식을 주기로 했다. 김연경은 지인들과 생일을 축하며 조용히 보낼 생각이다. 어쩌면 자신의 생일에 챔프전 직행 티켓이라는 선물을 받을 수도 있다.
김연경은 자신의 힘으로 챔프전 직행 티켓을 쥐고 싶진 않을까? 그는 “1위를 빨리 확정하면 좋겠다”라며 “정관장 전에서 이겨서 1위를 확정하는 것도 좋고, 생일인 내일 확정하는 것도 괜찮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