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레네산맥의 깊숙한 동굴에서 발견된 벽화이다. 날카로운 도구로 바위에 새긴 암각화인데, 기원전 1만2000년에서 기원전 1만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구석기 시대가 기원전 3만5000년경에서 기원전 1만년 경까지라고 한다면, 구석기 시대 후기쯤에 해당한다.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불구하고 사실감이 여전하다. 날카롭게 뻗은 순록의 뿔과 입을 벌린 채 뒤돌아보는 모습과 겁먹은 눈동자가 인상적이다. 순록 두 마리의 경쾌한 발걸음이 보일 듯이 다리들이 묘사됐고, 물고기의 옆모습과 머리 부분을 감안할 때 연어임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모든 것에 뛰어난 관찰력과 사실적인 묘사 능력이 바탕이 됐다.
왜 이 작품은 사람들의 왕래가 잦지 않은 산속 동굴에서 발견되는 것일까?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순수 미술 혹은 감상을 위한 작품으로 만들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미술사에서는 이것이 주술적 기능을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설명한다. 원시인들이 위협적인 야수로부터 보호받기 위해서 또 그들이 원하는 동물이 잘 잡히길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 그렸다는 것이다.
박일호 이화여대 명예교수·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