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쌀→유례없는 가격 급등→레이와(令和·2019년부터 사용하는 일본 연호) 쌀소동 재연 우려’
최근 일본에서 자주 언급되는 상황인 동시에 걱정 가득한 시나리오다. 유례없는 쌀값 고공행진에 가계는 이미 직격탄을 맞았고, 소매점 매대에서 일시적으로 쌀이 사라졌던 지난해 상황이 다시 일어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고수해 왔던 원칙까지 바꿔가며 비축미 21만t를 방출하기로 했다. 공급을 늘려 쌀값을 잡아보겠다는 심산인데 가격 상승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주식인 쌀의 가격 불안정이 이어지면서 생산량을 억제해 온 정책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년 사이 2배, ‘역사적 급등’
◆투기가 가격상승 요인(?)
심상찮은 상황에 일본 정부는 지난달 7일 비축미 21만t 방출 계획을 발표했다. 일본은 쌀생산량이 큰 폭으로 줄어드는 경우에 대비해 매년 약 20만t, 5년분 100만t를 보관하도록 법률로 정하고 있다.
비축미 방출은 이례적인 대응이다. 비축미와 관련된 현재의 시스템이 마련된 2011년 이후 세 번째이긴 하지만 앞선 두 번은 동일본대지진(2011년), 구마모토지진(2016년)에 대응한 것이었다. 이번처럼 쌀이 부족해 방출을 결정한 적은 없다. 요미우리신문은 “정부는 지금까지 흉작이나 재해시에 한정해 비축미를 방출해 왔다”며 “하지만 쌀값 상승에 따라 1월 말에 운용지침을 바꿔 쌀의 원활한 유통을 목적으로 할 경우에도 방출이 가능하도록 했다”고 짚었다. 지난 10일 우선 15만t에 대한 입찰이 진행됐다. 시장에 풀려 소비자들이 살 수 있는 시점은 이번 달 말로 예상된다.
일본 정부는 비축미 방출 계획을 밝혀 시장에 구두개입하는 것만으로도 쌀값이 떨어지거나 상승세가 억제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방출 방침 발표 이후인 지난달 12∼14일 실시된 총무성 소매물가통계 조사에서 효과가 없었다는 게 확인됐다. 이 때문에 쌀값 상승의 요인을 잘못 짚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가격 상승을 통해 이득을 챙기려는 투기 시도로 유통과정에 문제가 생긴 것이 쌀값 상승으로 이어졌다고 보고 있다. 농림수산성이 파악한 2024년 쌀생산량은 전년보다 18만t이 많은 679만t이다. 하지만 대형 거래업자들이 확보하고 있는 쌀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년보다 21만t, 지난 1월 기준으로 23만t이 적다. 이 차이가 거래업자들이 차익을 목적으로 쌓아둔 쌀의 양이라고 본다. 소비자나 음식점, 유통업자들이 지난해 같은 쌀품귀가 재연될 것에 대비해 재고를 많이 갖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일본 정부의 이런 분석이 맞다면 비축미 방출로 쌀값이 잡히는 효과가 있어야 하지만 현재로써는 그런 기미가 없다. 이 때문에 유통의 문제가 아니라 쌀 생산량 자체가 적은 것 아니냐는 시각이 강해지고 있다. 아사히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농림수산성이 지난해 생산량을 과대하게 계산했을 가능성이 지적되고 있고, 농가에서 생산량 추계에 바탕이 되는 작황지수가 ‘실제보다 높다’는 목소리가 많다”며 “근본적으로 쌀이 충분치 않다. 비축미 방출은 사막에 물을 붓는 것과 같아서 쌀값이 떨어지지 않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유통업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정부 관계자도 아사히에 “쌀값 상승의 원인은 투기가 아니라 단순히 쌀이 충분치 않은 데 따른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비축미 방출이 단기적으로 쌀값 하락을 유도할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니시가와 구니오(西川邦夫) 이바라키대 교수는 NHK방송에서 “(비축미 방출은) 올해 쌀생산을 억제할 가능성이 있다”며 “햅쌀이 나오기 전 쌀이 부족해지는 시점에 가격이 올라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생산량 억제 기본정책 전환 고심
지난해 쌀품귀에 이은 올해 쌀값 급등은 일본 정부의 긴장감을 바짝 올리고 있다. 쌀 관련 기본정책의 전환이 논의되는 이유다.
지난달 28일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총리는 총리관저로 와타나베 쓰요시(渡邊毅) 농림수산성 차관을 불러 ‘감반(減反)정책’에 대해 논의했다. 감반정책은 전후 일본에서 쌀 생산량 조정을 위해 유지해 온 것으로 경작면적을 줄여 생산량을 억제하는 방식이다. 서양화된 식습관, 고기, 유제품, 빵 등의 소비 증가로 쌀 수요가 줄어드는 상황에 대응한 것이다. 오랫동안 이어져 온 감반정책에 1960년대 세계 3위였던 일본의 면적당 쌀 수확량은 지난 10년 사이 한국, 중국 등에 뒤처져 세계 15위를 기록했다.
이시바 총리는 2017년 농림수산상을 지낼 당시부터 감반정책을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그는 “언제까지고 감반정책을 유지해야 하는 건 아니다”며 “생산성을 올려 농가가 자유롭게 쌀을 경작하게 되면 쌀값도 안정된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도 “지금의 쌀값 급등은 감반정책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농림수산성은 소극적이다. 생산량이 증가할 경우 쌀값이 폭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쌀 생산지별로 생산량을 할당하는 방식은 2018년 폐지했지만 보조금을 주어 밀가루나 사료용 쌀 등으로 전환하도록 장려해 왔다. 이에 대해 이시바 총리는 수요를 초과한 쌀은 수출하고, 쌀값 하락으로 인한 농가 손해는 보조금을 지급해 메꾸는 방식을 제안했다. 하지만 2024년 수출량은 5년 전에 비해 4만5000t 정도 증가했다. 일본의 주된 품종은 국제사회에서 소비가 적은 것이서 세계 전체로 봐도 수출량은 200만t 정도에 불과해 수출을 늘리는 것에 한계가 분명하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농림수산성이 검토 중인 방안은 일본 식문화의 해외 확산이다. 일본식 먹거리가 인기를 얻으면 일본쌀 소비도 늘어나지 않겠냐는 논리다. 스마트농업 등으로 생산성을 올려 2030년에는 수출량을 지금보다 8배 수준인 35만t으로 늘려 잡을 방침이다. 이런 목표는 5년마다 개정하는 ‘식료·농업·농촌 기본계획’에 반영된다.
아사히는 “내년 중에는 근본적인 쌀 정책 개혁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라고 전했다. 아라하타 가쓰미(荒幡克己) 일본국제학원대 교수는 “개혁이 늦어질수록 국제경쟁력은 떨어지고, 의욕 있는 젊은이들이 농업에 뛰어드는 것도 줄어들 것”이라며 “정부와 여당뿐만 아니라 폭넓게 의견을 모아 목표를 정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