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논두렁 길을 걷는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새들의 합창 소리가 은은히 귓바퀴를 간지럽힌다. 좋다. 참 좋다. 얼마 만에 보고 느끼는 지평선인가. 끝이 보이지 않는 논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논두렁 길을 혼자, 명랑명랑 산책하는 재미와 즐거움. 그리고 나를 향해 자신들이 가진 최고의 마술(?) 묘기를 흩어졌다 뭉치며 보여주는 구름, 구름들. 영국 낭만파 시인 퍼시 셸리처럼 나도 저 구름 속으로 녹아들고 싶다. 아님 존 러스킨처럼 저 구름들을 병에 담아 저장하고 싶다. 그러다 어느 날 병뚜껑을 열면 그 안에서 파블로 카살스가 연주하는 첼로처럼 우아하고 유쾌하고 평화로운 멜로디가 줄줄 흘러나왔음 좋겠다.
지천으로 깔린 큰개불알꽃들이 보라색 별들처럼 환하게 반짝이며 까르르 웃고 있다. 봄날에 만나는 작고 작은 들꽃들만큼 예쁘고 사랑스러운 게 있을까. 서울에선 도저히 맛볼 수 없는 청정한 공기 속에 떠도는 수줍고 소박한 봄 내음들. 그 속에서 팔랑팔랑 날아오르는 범나비들. 곧 개나리, 목련, 벚꽃이 피어나리라. 천지가 하양, 빨강, 노랑, 보라, 분홍… 꽃들로 덮이리라.
봄이 오면 봄날이 오면 모든 것이 다시 새로워지고 젊어지고 아름다워지는데 인간들은, 나는 왜 이 모양인지, 다시 사람들 속으로 들어오면 모두가 잘난 사람들투성이다. 그것도 비슷비슷하게 잘나고, 비슷비슷하게 똑 부러지고, 비슷비슷하게 친절하고, 비슷비슷하게 세련되고, 비슷비슷하게 타산적이다. 그 때문인지 이젠 사람 모인 곳에 가면 정말 재미가 없다. 내가 보기엔 다 비슷비슷한데도 자신이, 자신만이 특별하다고, 특별한 존재라고 장황설을 늘어놓으며 설득하려 애쓴다. 일찍이 연암 박지원이 비슷비슷한 것은 모두 가짜라고 말했거늘!
김상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