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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시선] 美의 민감국가 지정, 어떻게 볼 것인가

보안규정 위반에 대한 경고 시그널
韓·美 동맹 신뢰 문제로 번져선 안 돼

미국 에너지부가 지난 1월 한국을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 국가 목록(SCL)’에 포함시키는 결정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미 에너지부 자료에 의하면 ‘민감국가 목록’이란 외국인의 방문이나 협력 과제 관련 에너지부 내부 검토나 승인과정에서 정책적 이유로 특별한 고려가 필요한 국가를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정책적 이유란 국가안보, 핵 비확산, 테러 지원 등을 꼽을 수 있다. 민감국가로 분류된 국가로부터의 방문객은 ‘민감방문(sensitive visit)’, 즉 민감한 주제나 지역, 접근이 제한된 시설 방문, 혹은 그런 국가의 기업이나 조직을 위해 활동할 때 검토 대상이 된다. 작년까지 민감국가 목록에 포함된 25개 나라는 주로 테러 우범국이거나 미국의 제재 대상국들이었다. 여기에 한국이 추가되면서 민감국가는 26국으로 늘었는데 이들 중 미국의 동맹국은 한국이 유일하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국내 언론에선 미국 에너지부 결정을 두고 한국전력·한국수력원자력과 미국 원전기업 웨스팅하우스 간 원전 기술 분쟁과 국내의 독자 핵무장론 확대, 12·3 계엄사태와 탄핵정국 등 국내정치 불안정이 그 배경으로 거론됐다. 하지만 외교부 대변인실은 미국 에너지부를 접촉한 결과 한국을 민감국가 리스트 최하위 단계에 포함시킨 것은 외교정책상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에 대한 보안 관련 문제가 이유인 것으로 파악되었다고 밝혔다. 미 에너지부 감사관실(OIG)이 지난해 상반기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의하면 2년 전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에서 한 계약직 직원이 한국으로 원자로 설계 소프트웨어를 유출하려다 적발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민감국가 목록 등재와 관련해 미국 측은 동 리스트에 등재가 되더라도 한·미 간 공동연구 등 기술협력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우리 정부 또한 한·미 간 과학기술 및 에너지 협력에 부정적인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미 정부 관계기관들과 적극 협의 중이며, 동 문제의 해결을 위해 지속 노력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단 이번 사례가 외교·안보적 이유가 아니라 기술적 이유 때문인 것으로 밝혀진 건 다행이지만 한국 입장에서는 두 가지 문제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첫째, 미국 측 설명대로 한·미 간 공동연구나 기술협력에는 큰 영향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향후 미국이 이를 빌미로 한국을 압박할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는 없다. 한국이 민감국가로 지정되면 현실적으로 민감 분야의 협력이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원전이나 핵 비확산 분야, 반도체, 인공지능, 양자, 바이오테크 등 국가안보나 경제안보 차원에서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중시하는 분야가 대부분 포함된다. 한국 내에서 터져 나오는 무분별한 독자 핵무장론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둘째, 만일 한·미 간 교류 연구소들의 사소한 보안규정 위반 차원이라면 이는 한국 정부에 주는 경고성 시그널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앞으로 한국이 미국과 공동연구나 기술협력을 하려면 보안규정을 잘 지키라는 요구다. 만일 한국이 미국의 보안규정 기준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지난해 7월 외국대리인등록법(FARA) 위반 혐의로 기소된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 수미 테리 사건이 재발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당시 미 검찰은 테리를 기소하면서 한국 정부의 ‘정보원’과 교류하며 이를 바탕으로 포린어페어스 등 유력지에 한국에 우호적인 언론 기고문을 작성하거나 인터뷰를 했던 것을 문제 삼았다.

한국으로서는 바이든 행정부 말기에 한국 정부와 일체의 상의나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민감국가 목록에 한국을 포함시킨 점이 당혹스럽다. 바이든 행정부는 2023년 4월 워싱턴선언을 채택하고 한국과 핵협의그룹(NCG)을 통한 핵확장억제 협력을 추진해왔다. 그뿐만 아니라 한·미 간에 소형모듈원자로(SMR) 같은 차세대 원전 개발 협력은 물론 원전수출 협력을 위해 노력하는 등 우호적 분위기를 유지해왔다. 만일 미국의 결정이 한·미 동맹의 소통 구조나 신뢰의 문제라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이는 동맹을 대하는 적절한 방법이 아니다. 탄핵으로 대통령이 부재한 현 상황에서 정부 각 부처는 민감국가 지정으로 인한 불이익이 오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