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주석중 교수의 삶 다룬 다큐 생전 수술팀에 “화합하라” 강조 의정갈등 1년 넘어도 파행 답답 고통받는 국민 위해 화합해야
얼마 전 생명이 위태로운 환자를 살리기 위해 힘겹게 고군분투하는 의료진을 다룬 드라마와 다큐멘터리를 봤다. 지난 1월 넷플릭스에 공개된 후 큰 인기를 끈 8부작 드라마 ‘중증외상센터’와 KBS 1TV가 2023년 10월 선보인 ‘다큐 인사이트-빅팀’이다. ‘중증외상센터’는 천재 외과 의사 백강혁의 초인적 활약상을 중심으로 중증외상 환자 치료 현장을 다룬다. 의사답고 간호사다운 의료진의 희로애락을 실감 나게 표현하는 배우들의 열연에서 전해지는 감동이 묵직하다.
이 드라마를 정주행한 지 얼마 안 돼 우연히 유튜브로 접한 ‘빅팀’은 서울아산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고(故) 주석중 교수의 삶을 실마리로 해서 만든 다큐다. 심장혈관 분야 권위자인 주 교수는 초응급·고난도인 대동맥 수술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명의였지만 그해 6월 안타까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생전 이끌었던 대동맥 수술팀에 “팀원 없이 수술할 수 없다. 항상 화합해라.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환자는 반드시 살 확률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빅팀’에는 고인의 뜻을 이은 후배 의사들의 헌신과 중증 응급의료체계 유지를 위해 애쓰는 의료진 모습이 생생하게 담겼다. 이 명품 다큐를 보는 내내 감사와 안쓰러움, 뭉클함 등 여러 감정이 뒤섞이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강은 문화체육부장
‘중증외상센터’와 ‘빅팀’ 속 주인공들은 대중이 원하는 의료진의 표상이었다. 우리가 의사에게 유독 ‘선생님’이란 존칭을 붙이는 이유를 새삼 깨닫게 해줬다. 의사는 “제발 살려달라, 낫게 해달라”는 환자와 보호자들의 호소에 응답하는 게 소명인 직업이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건 이런 의사들이 눈에 띄게 줄고 있다는 것이다. 필수의료 분야로 꼽히는 이른바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의 경우 전공의·전문의 지원자가 급감한 지 오래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특히, 격무에 시달려도 낮은 수가 탓에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고 불가항력의 의료사고에도 민형사상 책임을 지게 되는 현실이 요인으로 꼽힌다. 여기에 출산율 저하와 인구 소멸 등이 겹쳐 정상적 운영이 어려운 비수도권 지역 필수의료 병원 중에선 폐원·폐과 사례도 속출한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편하고 여유 있게 일하면서도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쪽에 의사들이 몰리고 있다.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주로 미용성형) 등이 대표적이다. 환자 생명과 직결된 필수 의료를 담당하는 응급·지역(지방)·공공의료 체계가 온전할 리가 없다.
교통·추락사고 등으로 생명이 위급한 중증외상 환자 치료를 전담하는 권역외상센터만 봐도 그렇다. 권역외상센터는 외과, 심장혈관 흉부외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전문의 등이 365일 24시간 대기하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인 환자들을 치료해야 해 업무 긴장도와 강도가 높다. 의사들이 적절한 휴식을 취하며 교대 근무가 가능하려면 20명가량 필요하다. 그런데 보건복지부 자료를 보니 지난 1월 기준 전국 권역외상센터 17곳 중 9곳(53%)은 전문의 수가 10명 미만이었다. 특히, 원광대병원과 목포한국병원은 각각 4명과 5명에 그쳤다. 아주대병원(22명)이나 길병원(20명)과 크게 대비된다. 누구든 중증외상 환자가 될 수 있는데 어느 지역에 사느냐에 따라 생사의 기로가 갈릴 수 있다는 얘기다. 응급환자가 치료해줄 병원을 찾아 헤매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끝에 사망하기도 한다. 이런 일들이 생기지 않도록 촘촘한 의료체계를 구축하는 게 의료개혁이다. 의사로서 본분을 다하는 선생님들의 희생과 사명감에 기대기보다 그들이 안정적 여건에서 보람 있게 일하도록 뒷받침해줘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세밀한 진단과 처방책 없이 마치 의대 입학정원 2000명 늘리는 게 의료개혁의 핵심인 것처럼 밀어붙이면서 촉발된 의정 갈등과 의료·의대교육 현장 파행이 1년 넘게 지속되니 답답하다.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환자와 그 가족들의 심경은 오죽하겠는가. 의료개혁을 방치해 오고 의료대란도 해결하지 못하는 정부와 여야 정치권의 무능에 진저리난다. 국민 건강권을 나 몰라라 한 채 왜 의사가 됐고 의대에 갔는지 의심스러운 의사와 의대생들의 집단 이기주의 행태도 볼썽사납다. 이들 모두가 ‘빅팀’이라도 시청하길 권한다. “항상 화합해라”는 주 교수의 당부가 와 닿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