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 속 여야 대선 잠룡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헌법상 대통령 파면 시 60일 이내에 새 대통령을 선출해야 하는 만큼, 보통의 대선과 달리 각 주자에게 허용된 시간이 더욱 제한적이다. 물론 조기 대선 실시 여부는 윤 대통령의 파면 여부에 달렸다. 결과를 단정하기 어렵지만, 헌법재판소가 선고기일을 지정하지 않은 채 재판관 평의를 계속하는 점은 잠룡들에게 ‘몸풀기’를 위한 시간을 벌어주는 측면도 있다는 평가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런 급박한 대선 시간표가 예상되는 상황에서는 ‘공중전’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하는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공중전은 선거철 후보들이 미디어를 통해 자신을 알리는 선거 전략을 가리키는 정치권의 은어다. 직접 발로 뛰며 유권자들을 만나 지지를 호소하는 유세, 즉 ‘지상전’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과거의 공중전이 신문과 방송을 중심으로 전개됐다면, 요즘은 유튜브의 활용 비중을 높이는 쪽으로 선거 전략의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
◆짧지만 강렬하게
나중에 이 대표 측도 탈모 치료 건강보험 적용 공약을 쇼츠로 만들어 ‘대박’을 터뜨렸다. 탈모 건보 적용을 공약화한다는 소식에 온라인 커뮤니티가 먼저 반응한 것이 계기가 됐다. 온라인에선 “이재명은 나의 빛”, “이제부터 이재명에 대한 공격은 나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 등 평소 탈모로 고민하던 이들의 ‘지지 선언’이 쏟아졌다. 청년층 지지율을 높이고자 했던 이 대표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쇼츠에서 강렬한 멘트를 남겼다. “이재명을 뽑는다고요? 이재명은 ‘심는’ 겁니다.”
◆알고리즘으로 파고든다
제아무리 잘 만든 쇼츠 공약 영상도 정작 선거가 없다면 활용하기가 어렵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 결론이 나지 않아 정치권이 교착 상태에 빠진 지금 같은 상황이 그렇다. 이에 잠재 대선 주자들은 저마다 매머드급 구독자 수를 자랑하는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주제별 토크쇼를 하는 것으로 몸풀기를 하고 있다. 인지도를 높이는 동시에 자신의 정책 이해도를 과시하는 일거양득을 기대하면서다. 각 주자들은 계엄 사태 이후 침체된 경기 회복이 최우선 과제로 떠오르자 경제 문제를 집중 거론하는 모습이다.
‘야권 1강’인 이재명 대표는 지난달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구독자 207만명), 새날(〃 109만명) 등 유튜브 채널에 연달아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친야권 성향으로 분류되는 채널들이다. 이 대표는 유튜브에서 ‘중도보수론’과 경제 우클릭 기조를 부각했다. 특히 지난 대선 때 출연해 화제가 됐던 삼프로TV(〃 268만명)에도 재차 출연해 주식과 부동산 분야 견해를 밝혀 이목을 끌었다. 그는 1주택 실수요자에 대한 규제 완화와 주식시장 활성화 등 기존의 정책 기조를 재확인했다.
한 민주당 인사는 “많은 사람들이 관심 갖는 사안은 결국 먹고사는 문제인 경제”라며 “앞으로도 우리는 경제 문제에 집중할 것”이라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유튜브의 관건은 알고리즘을 타고 최종적으로 유권자들에게 도달하는 것”이라며 “핵심 메시지를 담은 짧은 클립이 해시태그를 통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 최대한 많이 노출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했다. 그는 “알고리즘을 통해 어디서든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경쟁 주자인 김부겸 전 국무총리와 박용진 전 의원도 각각 삼프로TV에 출연했다. 해외 유학하고 돌아온 김경수 전 경남지사도 매불쇼와 뉴스공장에 출연하는 등 지지층 붙잡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김 전 지사는 이 대표와 친명(친이재명)계가 윤 대통령과 맞서 싸우던 시기에 자신은 사면 복권을 받아 해외에 체류한 탓에 “당이 어려울 때 뭐 했나”라는 견제를 받고 있다. 김 전 지사의 소통 노력은 그간의 ‘부채’를 갚고자 하는 뜻도 담긴 것으로 분석된다.
여권 잠룡들은 조기 대선 가능성에 거리를 두고 있는 당의 공식 입장에 발맞춰 유튜브 출연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다만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 유승민 전 의원의 유튜브 활동이 눈에 띈다. 한 전 대표는 경제 유튜브 채널인 신사임당(구독자 201만명)에 이달 들어 두 차례 출연했다. 트럼프 시대 통상전략과 인공지능(AI), 가상자산 정책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경제 전문가인 유 전 의원도 삼프로TV에 나와 기술경쟁력 확보 및 산업 육성 필요성을 강조했다.
◆‘자기 진영’ 편향성 논란도
유력 정치인의 유튜브 발언은 전통 매체인 신문과 방송에서 핵심 내용이 인용·보도되기 때문에 잠룡들에게는 ‘가성비’ 있는 공중전 전략일 수밖에 없다. 출연자 입장에선 ‘자기 진영’쪽 ‘스피커’로 분류되는 채널에 나가면 비교적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카이스트 은재호 겸직교수는 “정치인의 뉴미디어 활용은 피할 수 없는 대세”라면서도 “자기 진영 지지 채널에만 출연해 상대 진영을 악마화함으로써 자기 진영 지지자들만 규합하려는 태도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채진원 교수는 “유권층을 파편화하는 과정에서 자칫 부분을 전체로 인식하게 하는 확증 편향성을 유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민대 정치대학원 윤수찬 교수도 “‘아군 스피커’를 적극 활용하는 과정에서 그러잖아도 갈등을 겪고 있는 정치권 내 불협화음이 더 커지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정제되지 않은 발언이 유튜브를 통해 전파돼 불필요한 정쟁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와 관련, 채 교수는 “공천심사를 할 때 단순 출연 횟수만을 살펴보는 정량평가에서 벗어나 논란 발언을 했는지 여부까지 종합적으로 평가한다면 유튜브 정치로 인한 부작용을 막는 제도적 장치로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은 교수는 “상대 진영에 대한 희화화와 악마화를 자제하고 대안 중심의 논의에 집중해야 한다”며 “정치 양극화를 거부하는 유권자감시연대를 발족할 필요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