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일가족 사망’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연락이 닿지 않던 가족들에게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시도하지 않았다. 경찰은 수억원대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해 처지를 비관하다 투신한 것으로 추정되는 40대 가장의 신원을 파악한 뒤 만 하루가 훌쩍 지나서야 자택 안방에서 아내와 나이 어린 자녀들의 시신을 발견했다.
지난달 9일 오전 4시30분쯤 경기 수원시 장안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일어난 일가족 사망 이야기다. 조금만 일찍 가족들의 행적을 추적했다면, 고귀한 목숨을 살릴 1%의 가능성이라도 건지지 않았을까. 이들의 사인은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사로 추정된다.
애초 경찰은 같은 아파트 단지의 투신자 자택을 찾아갔으나 문이 잠겨 있자 되돌아왔다. 이후 스무 차례 넘는 통화 시도에도 투신한 가장의 아내는 연락을 받지 않았다고 했다. “가족들이 주말마다 여행을 간다”는 주민 진술만 믿고 강제개방 조치 역시 포기했다. 스무 차례 넘는 전화에도 회신이 없다면 ‘정상적’ 상황은 아니었다. 해외여행을 갔다면 출입국 기록만 살펴봐도 된다.
해법은 세부 매뉴얼과 시스템을 갖추는 데 있다. 지난해 말 경기 평택시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전자발찌를 찬 40대 성범죄 전력자가 여성의 집 침입을 시도하다 붙잡힌 뒤 풀려났을 때도 경찰은 재발 방지 공문을 하달했다. 일선 경찰은 이를 두고 “붙잡힌 남성이 범죄를 자백하고 협조적이었다”며 긴급체포의 어려움을 주장했지만 파장은 작지 않았다. 보호를 받아야 할 피해 여성이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집을 나와 피신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고, 여론의 질타가 이어졌다.
당시 경찰은 현장 판단이 어려우면 해당 경찰서에 전화해 상의하라며 지구대·파출소에 대응 규정을 담은 상세 매뉴얼이 없다고 시인했다. 규정에 따라 법을 집행해야 하는 경찰관이 지역이나 현장,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른 판단을 내리고 책임까지 회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셈이다.
‘뒷북 행정’을 가리고, 일선 지구대·파출소의 미담만 퍼 나르는 게 경찰 본연의 자세는 아니다. 민생과 관련된 크고 작은 사건부터 확실한 규정을 다시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