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은 우아하지만, 내면에는 숨겨진 불안과 욕망, 파괴적인 본성을 가진 여주인공 ‘헤다’를 연기하기 위해 32년 만에 연극 무대에 오르는 배우 이영애(54)가 “이제까지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던 ‘이영애’하고 연극에서는 확실히 다를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8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에서 열린 연극 ‘헤다 가블러’ 제작발표회에서 모처럼 취재진 앞에 선 이영애는 “결혼하고, 아이도 크고 이제 사춘기가 됐다”며 “여성으로서 다양한 감정을 갖게 됐고, 제가 20대, 30대에 (이 작품을) 만났다면 ‘헤다’에 공감할 수 있었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현대 연극의 아버지’로 통하는 헨리크 입센 원작 ‘헤다 가블러’는 사회적 제약과 억압 속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여성의 심리를 다루는 작품이다. 귀족 출신 헤다가 학문적 성취 외에 관심 없는 조지 테스만과 결혼한 후, 단조로운 일상에 권태를 느끼던 중 옛 연인 에일레트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드라마 ‘대장금’, 영화 ‘친절한 금자씨’, ‘봄날은 간다’ 등에서 특별한 존재감을 선보여온 배우 이영애의 마지막 연극 출연작은 1993년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된 김상수 작·연출 ‘짜장면’이다. 이영애는 “그때 첫 작품이었고, 어렸지만 오랫동안 큰 기억에 남고 배우로서 20대, 30대를 보내며 항상 연극에 대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며 “그동안 기회는 있었지만, 타이밍상 잡지 못했는데, 이번에 좋은 기회가 생겼다”고 말했다.
연출 전인철은 “한 달 정도 이영애 배우와 작업했는데, 놀랄 정도로 성실하고, 하루하루 시간 안에 기복이 있는 걸 보지 못했다”며 “많은 것을 본인의 작업 속에 최선을 다하려 집중하는 것에 놀라웠다”고 말했다. 그는 ‘이영애 표 헤다’에 대해 “(이영애가) 귀여운 면도 많고 해서, 그런 부분을 무대에서 보여주고 싶었다”며 “안하무인 격의 헤다를 많은 사람이 갖고 있는데, 사람들과 소통하고 교류하면서 그 안에서 살아가려 하지만 그게 몹시 힘든 상황으로 돼 가는 인물을 생각하고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비슷한 시기 같은 작품으로 국립극단과 경쟁하게 된 상황에 대해 전인철은 “그 얘길 듣고 부담감이 생겼는데,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져주고,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예상도 하고 그러는 거 같더라”며 “제가 생각한 거 보다 긍정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잘된 일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LG아트센터 대극장에서 5월 7일부터 6월 8일까지 공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