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술의 성지였다고 알려진 종로 탑골공원 주변 식당들. 이제는 잔술 파는 곳이 거의 사라졌다. 어찌어찌 찾아 들어간 식당 메뉴판에 ‘잔술 2000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 집에서 파는 잔술은 소주 반 병, 막걸리 반 병을 잔술이라고 해. 나는 막걸리를 마시는데 가끔 소주 잔술을 먹기도 하지.” 이 할아버지는 잔술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한잔에 주는 술이 잔술이 아니야. 맥주 유리잔 같은 데 가득 주니 반 병쯤 되지. 그게 잔술이야. 진짜 잔술은 간에 기별도 안 되지~.”
이때 옆자리에 있던 아저씨도 한마디 거든다. “한 병 마시기엔 좀 많고 하니 잔술로 먹을 때도 있지. 다른 식당도 잔술로 달라면 줘~.”
잔술. 한 잔의 술, 낱잔으로 파는 술이다. 盞(잔)술, 한자와 한글이 합쳐진 말이다. 지난해 5월 말부터 시행된 ‘주류 면허 등에 관한 법률 시행안 개정안’은 ‘주류를 술잔 등 빈 용기에 나누어 담아 판매하는 경우’를 주류 판매업 면허 취소의 예외 사유로 명시했다. 잔술의 합법화 후 잔술의 현주소는 어떨까. 힘들게 살던 시절, 퇴근길 잠시 몸을 데웠던 잔술의 추억이 사라지고 있다. 한마디로 잔술을 파는 곳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어렵게 파는 곳을 발품 팔아 찾아봤다.
이 가게 말고 다른 가게에서도 잔술을 파는 곳이 있는지 물어보자, 아저씨 한 분이 “예전엔 여기서 조금 나가 저쪽으로 가면 잔술 파는 데가 있었는데… 아! 맞다. 지금은 없어졌지. 여기밖에 없네. 잘 안 먹지 잔술로는…”라고 대답한다.
주인 아주머니의 이름을 딴 ‘영심이네’ 가게 사장님은 “가끔 잔술 드시러 오시는 분들이 있어요. 젊은 사람들은 호기심에 오기도 하고. 여긴 주말에 잔술이 좀 나가요”라며 “한 3년 전부터 막걸리 한 잔, 1500원으로 올려 지금껏 그대로지요”라고 말한다.
동묘 벼룩시장, 평일에도 사람들로 북적인다. 구제 패션 가게가 많아 젊은이들도 자주 찾는 상설 벼룩시장엔 없는 게 없을 정도로 별의별 게 다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시장 한복판엔 잔술로 막걸리를 팔고 있다. 아직은 이른 오후라 식혜를 찾은 사람들만 있다. 주인장은 “잔술도 꽤 나가지요. 정확하게 몇 잔 나가는지는 세 보진 않았지만 꽤 나갑니다”라고 말한다. 벼룩시장 한쪽엔 또 다른 잔술집이 있다. 튀김류를 전문으로 파는 가게. 주인 아주머니는 “아유~ 잔술은 무슨~ 요즘 누가 찾는다고. 하루에 10잔도 안 나가. 못사는 사림이나 먹지”라고 얘기한다.
있던 것들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한 병을 먹기에는 너무 많고 호주머니 사정을 위해 생겨났던 잔술 문화가 이젠 어디에서도 찾기 힘들어지고 있다. 아마도 어디에선가 서로의 필요에 의해 생겨났던 잔술 문화가 지금도 왕성하게 이어지고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