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분야에서 오래 종사한 전문가를 일컫는 ‘베테랑’이란 말은 전투 경험이 풍부한 군인을 뜻하는 프랑스어에서 나온 말이다. 목숨이 걸린 전장에서는 많은 전투를 치른 노련한 병사의 역할이 크기에 나온 단어다. 모든 경기가 전투에 비유될 만큼 치열한 프로야구에서 베테랑의 존재는 중요하다. 경험과 노련미로 경기의 흐름을 좌우할 능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2025 KBO리그 초반, 타격 전선에서도 ‘베테랑 4인방’의 활약이 눈에 띈다. 바로 손아섭(37·NC), 강민호(40·삼성), 김현수(37·LG), 최형우(42·KIA)가 그 주인공이다. 1980년대생인 네 선수가 리그 타격 순위 상위권에 자리 잡으며 관록을 과시하고 있다. 지난 14일 기준 타격 1위는 4할 타율(50타수 20안타)의 깜짝 활약을 펼치고 있는 전민재(롯데)이지만 뒤를 손아섭(0.389, 2위), 강민호(0.371, 3위), 김현수(0.362, 4위)가 바짝 쫓고 있다. 가장 고참인 최형우(0.321)도 당당히 8위에 올라 건재함을 뽐냈다.
이들이 타율만 높은 게 아니다. 최형우는 출루율과 장타율을 합친 OPS가 0.941로 리그 7위이고, 0.933의 손아섭과 김현수는 공동 9위, 0.919의 강민호는 11위에 자리했다. 특히 강민호는 23안타로 최다안타 공동 1위, 13타점으로 타점 공동 8위에 이름을 올렸다. 네 베테랑은 타자의 득점생산력을 보여주는 지표인 wRC+ 순위에서도 상위권에 포진했다. wRC+는 리그 평균을 100으로 놓고 그보다 얼마나 높은 비율로 득점생산에 기여했는지 보여준다. 손아섭은 wRC+ 174.6으로 평균보다 74.6% 더 득점생산에 기여해 리그 전체 5위이고, 김현수는 7위(172.8), 강민호는 8위(168.3), 최형우는 12위(158.4)다. 모두가 팀 공격의 첨병이란 얘기다.
꾸준한 타격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손아섭은 지난해 박용택의 2504안타를 넘어서 현재까지 2532안타로 KBO 개인 통산 최다안타 신기록을 계속 써가고 있다. 2025시즌에도 뛰어난 스트라이크존 적응과 콘택트 기술을 바탕으로 한 ‘노쇠화 회피형 타자’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구속이 빨라진 리그 환경에서도 타석당 삼진율이 0.12에 불과하다는 게 손아섭의 빼어남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