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부가 바뀌면 외교정책이 바뀌고 그에 따라 외교 전담 조직이 개편되기도 한다. 당연한 수순이지만 대외정책을 담당하는 기구인 만큼 다른 정부 개편보다 외부에 주는 함의가 크다. 한국 외교부가 지난해 차관급 조직이었던 한반도평화교섭본부를 폐지하고 북핵, 북한 관련 업무를 신설한 외교전략정보본부 내 4개 국장급 기구 중 하나인 한반도정책국으로 축소했을 때도 그랬다. 북핵외교가 한국 외교의 중심축에서 살짝 비켜났다는 메시지를 외부에 준 것이다. 2006년 6자회담 대응을 위해 만들어졌던 한반도평화교섭본부는 북핵 대화 장기 교착과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등으로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환경이 크게 바뀐 시점에서 어느 정도 개편 필요성이 있었지만, 폐지 자체는 상징성이 컸다.
이번 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국무부의 조직 개편은 좀 더 노골적이었다. 다른 나라도 아닌 미국 외교 담당 조직의 개편인 만큼 전 세계에 미치는 파급력이 작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는 민간안보·민주주의·인권 담당 차관 자리가 사라진 것이다. 대신 급이 낮은 대외원조인도주의 업무 담당 조정관을 신설했는데 사라진 차관 자리에서 하던 일과 더불어 사실상 폐지된 미국 국제개발처(USAID)의 대외원조 업무를 함께 맡을 전망이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국무부 서브스택(뉴스레터 플랫폼)에 올린 글에서 민간안보·민주주의·인권 담당 차관 아래에 있던 인권·민주주의·노동국을 비판하며 이 기관이 “폴란드, 헝가리, 브라질 등 ‘반(反)각성’(anti-woke) 지도자들을 겨냥해 좌파 활동가들이 개인적 보복을 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이스라엘에 대한 혐오를 무기 금수 조치 등 구체적인 정책으로 전환하는 수단이 됐다”고 주장했다. 중국·러시아를 주로 겨냥해온 허위 정보 대응 담당 부서도 폐지됐다.
국무부의 인력 15%, 조직 18%가 축소된 사실 자체도 큰 뉴스지만 외부인 시각에서 그보다 더 상징성이 큰 것은 미국 외교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담당하는 조직의 비중이 차관급에서 조정관급으로 밀려난 것이 아닐까 한다. 워싱턴에 와서 미국 국무부의 조직도를 봤을 때 가장 눈에 띄었던 것 중 하나가 인권과 민주주의를 담당하는 차관이 적어도 직제상으로는 정무 담당 차관과 비중이 동일한 여섯 자리의 차관직 중 하나라는 점이었다. 한국 같은 중견국의 외교 환경과 자원으로는 쉽지 않은, 자유주의 진영의 선두주자인 미국이기 때문에 가능한 직제 편성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바뀐 트럼프 행정부의 국무부 조직에선 미국의 우선순위 외교 어젠다가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생각을 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