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2년여 전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재해조사의견서 공개를 약속했지만 여태까지 단 한 건도 내놓지 않고 있다. 재해조사의견서는 중대재해 발생 시 고용당국이 조사를 거쳐 사고원인·안전조치 등을 담아 작성하는 문서다. 고용부는 재해조사의견서 공개 방침을 밝힐 당시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공적 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런 공언 이후 고용부가 조사를 진행하고도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묵혀놓은 재해조사의견서는 현재까지 최소 1400여건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말 그대로 일하는 사람의 ‘피’로 쓰인 공적 자원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 채 캐비닛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형국이다.
1일 더불어민주당 박홍배 의원실이 고용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실시한 중대재해 원인조사 건수가 3736건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한 해 700건 안팎의 재해조사의견서가 생산되는 셈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재해조사의견서 공개를 미루는 데 고용부가 국회의 심사 지연을 ‘방패막이’로 삼고 있단 지적도 나온다.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은 “재해조사의견서 작성 자체는 형사절차의 일부가 아닌데, 고용부는 계속 ‘피의사실 공표 우려가 있다’며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며 “법적 근거가 필요하단 주장도 그저 비공개를 위한 알리바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실제 산재 관련 형사절차에서 재해조사의견서가 주요한 자료로 활용된다”며 “법무부 또한 ‘공소 전’에 재해조사의견서를 공개하는 건 형법과 충돌할 수 있단 의견을 냈다”고 반박했다. 이런 이유로 고용부는 산안법을 개정하더라도 ‘공소 후’에라야 재해조사의견서를 공개할 수 있단 입장이다.
일부 전문가는 재해조사의견서 작성을 위해 실시하는 중대재해 원인조사 자체가 원래 법 취지에서 벗어나 ‘수사 전 단계’로 운용되는 현실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 산안법은 중대재해 원인조사 목적을 △원인 규명 △산재 예방대책 수립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김예찬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활동가는 “재해조사의견서 작성이 마치 수사 전 단계로 다뤄지는데 그러다 보니 사고 예방과 재발 방지란 본래 목적이 달성되지 못한 것”이라며 “형사절차와 분리할 수 있도록 조사 자체를 개편해 그 결과 공개 시점을 공소 전으로 당기는 안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