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생명이 업계 1위 SBI저축은행을 인수하기로 한 가운데 2위인 OK저축은행도 상상인저축은행 인수를 추진하면서 10여년간 정체 상태던 저축은행 업계에 지각변동이 예고됐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로 건전성이 떨어진 저축은행들이 SBI저축은행 매각을 계기로 물밑 작업에 박차를 가하면서 올 하반기부터 인수합병(M&A)을 통한 구조조정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6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OK금융은 지난해 말 상상인저축은행 인수를 위한 실사를 마치고 저축은행 측과 가격 협상을 벌이고 있다. OK저축은행은 작년 말 기준 업계 총자산 순위 2위(13조5889억원)로, 12위인 상상인저축은행(2조3765억원) 인수가 성사되면 합산 총자산이 16조원에 육박하면서 현 1위인 SBI저축은행(14조289억원)을 넘어서게 된다. 상상인그룹은 최대주주의 대주주 적격성 유지 요건 문제로 상상인저축은행과 상상인플러스저축은행을 매각해야 하는 상황이다.
교보생명은 지난달 28일 금융지주 전환을 위해 SBI저축은행을 인수한다고 밝혔다.
금융당국도 저축은행 M&A 및 구조조정 속도를 높이기 위해 지난 3월 관련 규제를 2년간 한시적으로 완화한다고 발표했다. 당국은 2011년 부동산 PF 부실로 촉발된 ‘저축은행 연속 영업정지 사태’ 이후 한 대주주가 전국 6개 영업구역 중 3곳을 초과해 영업하는 것을 막아 왔다. 하지만 상상인저축은행이 적기시정조치를 받는 등 업계 구조조정 필요성이 높아지자 2023년 7월 비수도권 저축은행은 4곳까지 영업구역을 확대할 수 있도록 했고, 올해 3월부터는 자산건전성이 4등급 이하라면 수도권 저축은행도 M&A를 허용키로 했다. M&A 대상의 국제결제은행(BIS) 비율 기준도 9% 이하에서 11% 이하로 완화했다.
업계에선 규제 완화로 저축은행 10여곳이 신규 M&A 대상으로 편입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라온·HB·애큐온·OSB저축은행이 잠재 매물로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작년 12월 적기시정조치를 받은 라온저축은행은 코스닥 상장사인 베셀에 지분 32만주(지분율 40%) 매각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업황 악화로 저축은행업권 M&A 시장이 활성화되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시선도 있다. SBI저축은행의 경우 업계 1위의 우량 저축은행인 데다 교보생명과의 오랜 협력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매각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현재 저축은행 인수를 추진 중인 곳도 OK금융 한 곳뿐이다. OK금융은 한때 페퍼저축은행 인수도 고려했지만 회계법인 실사 이후 추가 절차를 적극적으로 밟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업계에서는 저축은행 구조조정 활성화를 위해선 부실 저축은행에만 M&A를 허용하지 말고 이를 ‘완전 자율’로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오화경 저축은행중앙회장은 지난 3월 기자간담회에서 “중견기업 등에서 저축은행을 사고 싶은 곳이 많고 팔고 싶은 저축은행도 많다”며 “당국에서도 매각 시장을 더 확실하게 열어주는 게 시장 활성화를 유도하고 건전성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다만 금융당국은 소수 은행으로 M&A가 집중되면서 ‘저축은행 사태’가 재발할 수 있다고 보고, 추가 완화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