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에너지·자원 공급망을 미국 중심으로 되돌리기 위한 ‘에너지·자원 미국우선주의’ 정책을 공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환경 등의 분야에서 국제 규범을 존중하는 가운데 동맹국들과의 연대를 통해 미국 중심의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노력을 해왔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보다 노골적으로 미국의 국익에 맞춰 관련 정책을 밀어붙이는 중이다.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개발 프로젝트 등에 이미 참여를 요구받고 있는 한국은 앞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에너지·자원 공급망 정책이 가져올 변화를 민감하게 살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3개월여 동안 미국 에너지·자원 개발과 관련한 여러 개의 상징적인 정책을 발표했다. 심해 채굴 촉진 행정명령 발표, 전국 10개 광산 프로젝트에 대한 인허가 신속 처리 방침 발표 등이다. 여기에 알래스카 LNG 개발 프로젝트에 동맹국 참여 압박, 우크라이나와의 광물협정 체결 등은 트럼프식 미국 우선주의 공급망 정책이 각 동맹국들에 미치는 영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목표는 중국을 공급망에서 제외시키는 것이다.
◆환경·국제규범보다 미국 자원 개발
◆동맹국에 대해서도 노골적인 이권 쟁취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에 노골적으로 미국산 구매, 미국 프로젝트 투자를 요구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다. 총 440억달러(약 60조원) 규모의 이 프로젝트는 알래스카 북부 노스슬로프에서 남부 니키스키까지 약 800마일(약 1287㎞)의 파이프라인을 건설해 천연가스를 수송하고 액화해 아시아로 수출하는 것이 골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의 회담에서 투자를 요청했고, 한국과의 고위급 만남에서도 여러 번 이 주제가 다뤄졌다. 대만은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로부터 연간 600만t의 LNG를 구매하고 투자하는 내용의 비구속적 의향서를 이미 체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25%, 일본 24% 등 아시아 국가들에 높은 관세율을 부과한 상태에서 동맹국들은 미국의 요구에 호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각국의 에너지 기업들은 이 프로젝트의 높은 비용과 불확실성에 우려를 보이는 게 사실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심해 채굴 행정명령에도 동맹국들과의 과학탐사, 상업 채굴 협력 체계 구축의 필요성에 대한 언급이 들어갔다. 알래스카 프로젝트만큼 본격적으로 거론되지 않았지만 향후 인도, 호주, 일본 등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를 요청받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알래스카 프로젝트가 관세를 고리로 한 동맹국 압박이라면 우크라이나와 체결한 광물협정은 안보를 직접적인 매개로 활용해 동맹국을 미국의 경제적 이익 확보에 끌어들인 상징적인 사건이다. 지난 2월28일 트럼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협정 조인식을 위해 만나 회담하다가 공개 언쟁을 벌이며 파국을 맞은 지 두 달 만에 가까스로 지난주 체결된 광물협정은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광물자원, 석유, 가스, 기타 천연자원에 대해 공동 투자 관계를 구축하는 내용이 담겼다. 트럼프 행정부로선 우크라이나에 대한 향후 군사 지원의 대가로 희토류 개발 등과 관련한 이익을 얻을 수 있게 됐고, 우크라이나로서는 자국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 끊기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유인책을 확보하게 된 셈이다. 다만 미국이 통제권 확보 필요성을 거론해 우크라이나가 반발했던 자포리자 원전에 대한 언급은 포함되지 않았다.
◆결국 목표는 중국 옥죄기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 우선의 자원·에너지 공급망 정책을 내세우면서 겉으로는 미국 제조업 부활과 에너지 안보 강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핵심 목표는 중국 견제라는 평가가 나온다. 우크라이나와 광물협정을 체결하는 것만 해도 전 세계 희토류 가공의 85∼90%를 점유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심해 채굴 촉진, 미국 내 광산 개발 인허가 조치 완화, 알래스카 에너지 프로젝트 개발, 에너지·자원을 넘은 직접적인 반도체 수출 통제 조치인 지난달 엔비디아에 대한 H20(저사양 칩) 대중국 수출 통제 조치까지 모두 같은 맥락이다. 중국은 심해 채굴, 광산 개발 인허가 완화 등 트럼프 행정부 초기에 나온 일련의 조치에 반발했다. 미국에 대한 수출 통제, 광물 비축량 증가 등 대응에도 적극적이어서 미·중 간의 공급망 경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