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미국은 징병제를 폐지하고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이름 아래 모병제를 도입했다. 이는 안보나 국방상의 필요가 아닌 정치적 이유에서 비롯된 결정이었다. 베트남전쟁 반전 여론을 잠재우고 젊은 유권자 및 학계와 진보층을 끌어들이겠다는 닉슨 대통령의 정치적 계산에서 비롯된 공약이 실현된 것이다.
모병제는 걸프전쟁 당시 첨단무기와 정예 병력을 앞세운 승리로 인해 대성공처럼 보였다. 그러나 모병제가 지향한 전문 직업군인 체제는 전쟁 부담을 특정 계층에 집중시키는 구조적 불평등으로 이어졌다. 9·11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은 미국 인구의 1%에 불과한 자원병들에 의해 수행되었고, 이들은 주로 경제적 하위 계층 출신이었다. 병력 부족으로 동일 병사가 수차례 반복 파병되었으며 ‘스톱로스’라는 사실상의 강제 복무연장제도까지 시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군인이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약물 중독, 가정 파탄, 자살 등 심각한 전쟁 후유증을 겪었다.
모병제로 인한 병력 부족은 도덕적 문제를 넘어 미국의 전략 실패로 이어졌다. 과거 미국은 징병제를 통해 수백만의 병력을 단기간에 확보함으로써 2차대전, 6·25전쟁, 베트남전쟁과 같은 대규모 전쟁을 수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에서는 모병제에 따른 병력 부족으로 증파 전략과 대반란전 교리를 온전히 실천하지 못했다. 징병제 없이 미국은 더 이상 자국의 세계 전략인 ‘두 개의 전쟁 수행’을 할 수 없다.
심호섭 육군사관학교 교수·군사사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