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에 사는 A씨는 임신 8주차로, 2023년 9월 첫째 출산 후 올해 둘째 임신을 계획했다. 맞벌이로 양가 부모님들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라 둘째 계획을 결심하기까지 쉽진 않았다. 결심에 영향을 준 건 지난해 남편의 이직이었다. 남편이 주 2회 재택근무를 하며 부모님과 교대로 첫째 어린이집 등하원을 전담하는 게 A씨 육아 부담을 크게 덜었다. 글로벌 스포츠 의류 업체에 재직 중인 남편의 회사는 강남에 있어 출퇴근 시간은 왕복 최소 2시간이다. A씨는 “지금처럼 주 2회 재택근무한다는 조건으로 둘째도 가진 거니 근무 형태가 바뀌어 육아에 소홀해지면 그땐 회사가 책임져야 한다”고 남편에게 말했다.
A씨 사례처럼 남편의 육아휴직, 가족돌봄휴가, 재택근무제가 양육참여를 유의미하게 높여 부인의 후속 출산 의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 이들 제도가 중소기업에서도 실질적으로 활용되도록 행정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연구진은 제언했다.
3개 제도 중 제도 그 자체가 후속 출산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재택근무제가 유일했다. 육아휴직과 가족돌봄휴가 제도는 직접 효과가 유의미하지 않았고, ‘양육참여 증가’를 매개로 할 때만 후속 출산에 영향을 미쳤다.
양육참여 증가로 이어지지 않은 시차출퇴근제는 후속 출산에는 직접 영향을 미쳤다. 남편이 시차출퇴근제를 이용한 가정은 그렇지 않은 가정보다 아내가 후속 출산 계획을 가질 가능성이 약 96% 증가해 재택근무제(52% 증가)보다 더 영향력이 컸다. 재택근무와 시차출퇴근제 모두 후속 출산에 영향을 미쳤으나 그 경로는 다른 셈이다. 연구진은 “시차출퇴근제가 일·가정의 양립 가능성을 높여 가족 스트레스를 줄인다는 선행연구와 유사한 결과”라고 했다.
연구진은 “두 가지 유연근무제도가 후속 출산 계획에 직접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확인된 만큼 이를 양육참여 증진과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조직문화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재택근무는 양육참여를 높이는 효과도 있어 재택근무 확대를 뒷받침할 기술적, 제도적 인프라 강화를 정책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는 유자녀 1703가구를 대상으로 했다. 7개 제도를 최소 하나 이상 써 본 남편은 35.9%였고, 이용률이 가장 높은 제도는 ‘육아휴직’(17.0%), 낮은 제도는 ‘원격근무제’(3.2%)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