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순방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동 국가의 일에 더는 개입하지 않겠다고 선포해 아랍 국가 주요 인사들로부터 ‘기립 박수’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동에서 경제적 이익을 챙기고 표면적인 ‘중재자’ 역할은 하되 적극적 개입은 하지 않는 것으로 미국의 중동 정책이 선회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14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투자 포럼 연설에서 미국은 더 이상 다른 국가의 재건이나 개입을 하지 않을 것이라며 더 이상 중동 국가들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훈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개입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이해조차 하지 못하는 복잡한 사회에 간섭을 해왔다”며 “자신의 운명은 자신의 방식대로”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을 마치고 청중들로부터 기립 박수를 받았다.
NYT는 이날 연설 영상이 중동 여러 국가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에 빠르게 퍼지며 화제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라크 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등 중동의 핵심 사안마다 이뤄져 온 미국의 개입에 반감을 갖고 있던 일부 주민과 중동의 지도자들이 이를 반기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과시와 달리 실제 계약의 규모는 이보다는 작다는 미국 언론의 분석도 제기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카타르항공과 보잉의 계약과 관련해 계약 기간이 명시되지 않았고, 항공사가 통상적으로 항공기를 구매할 때 할인을 협상하는 만큼 실제 계약 금액은 공개된 960억달러보다 낮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NYT는 전날 백악관이 공개한 사우디와의 6000억달러 사업 계약도 실제로는 절반 정도 수준인 2830억달러(331조1700억원) 정도라고 분석했다. 백악관이 사후 배포한 자료를 보면 수치가 불분명하고, 트럼프 2기 행정부 이전에 이미 진행 중인 사업도 일부 포함됐다는 것이다.
15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중동 순방과 관련해 중국과 ‘영향력’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사우디 국영방송 알 에크바리에 따르면 미국과 사우디의 이번 투자 협정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2년 방문했을 당시 체결한 총 300억달러(42조원) 규모의 협정보다 규모가 훨씬 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미국의 발표가 ‘약정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중국이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온 중동 내 입지를 단숨에 흔들기에는 부족하다는 분석을 하고 있다. 사우디와 걸프협력회의(GCC) 국가들이 미국의 기술과 자본에 주목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과의 경제 협력까지 후퇴시키려고 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중국은 이미 인프라, 제조업, 디지털 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동과의 협력을 공고히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