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힘들어요. 지금 머리도 너무 아프고, 더 이상 못 읽겠어요.”
지난 20대 대선 때 나온 공약서를 읽던 발달장애인 문석영(33)씨는 지난달 16일 머리를 감싸쥐며 주름이 잡힐 정도로 미간을 찌푸렸다. 재정자금, 패러다임 전환, 매칭 고도화, 수요에 부응, 복합개발…. 무슨 뜻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단어가 줄지어 나온 탓이다. 발달장애란 지적장애, 자폐 등 성장기에 또래에 비해 발달 속도가 느린 장애를 뜻한다.
문씨가 공약서를 읽으려 자리에 앉았을 때는 근무 중인 발달장애인자립생활센터 피플퍼스트에서 집중해야 하는 일을 하나 끝낸 직후였다. 하루 종일 공약서를 읽을 시간을 내야 제대로 집중할 수 있는데, 그마저도 내용이 어려워 완전히 이해하기도 어렵다고 고개를 저었다. 공약서는 공약의 목표, 우선순위, 이행 절차 등을 구체적으로 담은 문서다. 공약서는 20쪽으로 약 350쪽인 공약집보다 분량이 적지만 문씨는 공약서를 그대로 덮었다.
발달장애인은 선거에 관심이 없을 것이라는 편견과 달리 오히려 투표에 적극적이다. 박현철(38)씨는 참정권을 처음 가진 스무 살 이후부터 선거 때마다 투표장을 찾았다. 그는 “발달장애인은 아무것도 모르고 투표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아니다”고 강조했다. 박씨는 윤 전 대통령 정부 때 일어난 일을 꿰고 있었다.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이전한 일, 비상계엄 선포 후 계엄군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투입된 일 등을 물 흐르듯 설명했다.
쉬운 공약을 의무화할 수 있도록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송효정 피플퍼스트 서울센터 사무국장은 “현행 공직선거법이 점자공약집을 내도록 규정한 것처럼 쉬운 공약집도 법으로 의무화할 수 있을 것”이라며 “단순히 간단한 말이 아니라 맥락이 포함된 정확한 쉬운 공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