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정부 출범 첫날부터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국회에서 대법관 증원을 위한 법 개정안 처리를 밀어붙이며 강도 높은 사법 개혁의 포문을 열었다.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부터 각급 법원과 헌법재판소 등 사법부까지 형사·사법체계 전 분야에 걸친 고강도 개혁이 예고됐다. 세계일보가 의견을 물은 법조계 관계자들은 하나 같이 “속도 조절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대법관 30명으로 증원, 재판소원 허용
익명을 요구한 한 수도권 지법 부장판사는 “과거 노무현정부 때 사법 개혁 드라이브는 정권이 걸었지만 사법부도 적극 호응해서 상당히 내실 있게 추진된 적이 있다”며 “정부가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식으로 해선 안 된다”고 당부했다.
법원 재판에 관한 헌법소원심판을 허용하는 재판소원의 도입도 관심사다. 이 대통령의 공약집엔 담기지 않았으나 민주당 의원들은 재판소원 도입 등 내용을 담은 헌재법 개정안을 여럿 발의했다. 한 고법 부장판사는 “재판소원이 도입되면 소송 비용이 크게 늘고 재판이 지연되기 때문에 국민이 피해를 입을 것”이라며 “헌법 원리에도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헌법상 3심제가 사실상 4심제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법부가 공정성·독립성·중립성을 지키려면 법관 ‘코드 인사’를 막아야 한다”며 “독립된 추천위원회가 법관 후보를 추천하고,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로 결정하게 하는 방안 등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검찰 쪼개고, 공수처 강화·경찰 독립
검찰은 현 정부에서 전례 없는 ‘대수술’을 앞두고 있다. 검찰의 수사권·기소권을 분리하고자 조직을 둘로 쪼개는 게 골자다. 이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검찰청을 기소와 공소 유지 기능만 남긴 가칭 ‘기소청’으로 개편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기존 수사 기능은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신설해 넘기고, 수사기관 간 상호 견제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도 덧붙였다.
정부는 조직 개편과 별개로 ‘검찰 힘빼기’에도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의 공약에는 검사 징계 파면 제도 도입이 포함됐다. 현행법상 일반 공무원과 달리 검사는 탄핵 또는 금고 이상 형을 선고받은 때가 아니면 파면되지 않는데, 자체 징계만으로도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형법상 피의사실 공표죄 강화와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에 대한 처벌 강화, 조건부 구속영장제·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등 공약도 있다.
반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위상은 강화될 전망이다. 공수처 인력을 늘리고 제도를 개선해 그간 끊이지 않았던 수사력 논란을 떨치고 제대로 자리 잡도록 하겠다는 게 그간 이 대통령의 발언 취지다. 경찰 관련 공약으로는 총경 이상 경찰공무원 임용 제청 권한 등을 행사하는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을 폐지, 경찰의 인사 독립성을 제고한다는 내용 등이 있다.
최정규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는 “지난 (문재인정부 때의) 검찰 개혁에서 고발인 이의신청권 폐지처럼 오히려 시민에게 불편을 끼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는 만큼, 이번에는 시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신중히 접근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검찰의 권력은 불기소에서 나오는 측면이 많다”며 “일정한 요건이 되면 반드시 기소를 하게끔 하고, 또 거기에 대한 다양한 통제를 두는 방식을 법제화하는 게 보다 본질적인 해결책 아닐까”라고 되물었다. 그는 “일관된 속도로, 어설프게 타협해 방향을 흐트러뜨리거나 악화시키지 말고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