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오픈은 테니스 4대 메이저대회 중 유일하게 불에 구운 흙을 바닥에 깐 클레이 코트에서 치러진다. 프랑스오픈이 열리는 파리의 롤랑가로스는 2005년부터 ‘라파엘 나달(39·스페인)의 땅’으로 불렸다. 하드 코트나 잔디 코트보다 공이 높게 튀고, 많은 스핀이 걸려 속도가 느려지는 클레이 코트의 특성상 엄청난 체력과 정신력, 빠른 발을 갖춰 랠리에 강한 나달과 찰떡궁합이었다. 2005년 첫 출전부터 우승을 거머쥔 나달은 2022년까지 18번 출전해, 14번이나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흙신’이라 불렸다.
그러나 세월 앞에 장사가 없었다. 부상으로 2023년 프랑스오픈에 불참한 나달은 지난해 1라운드에서 탈락한 뒤 자신의 프랑스오픈 도전사를 끝냈다. 나달은 2025 프랑스오픈이 개막한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스스로 ‘제2의 고향’이라고 한 파리 롤랑가로스에서 성대한 은퇴식을 치렀다.
이번 프랑스오픈은 나달의 뒤를 이을 새 ‘클레이 코트 제왕’의 대관식으로 기억될 전망이다. 나달과 같은 스페인 국적의 ‘후계자’로 일컬어지는 세계랭킹 2위 카를로스 알카라스(22)가 세계랭킹 1위 얀니크 신네르(24·이탈리아)를 꺾고 프랑스오픈 2연패를 달성했기 때문이다. 알카라스는 9일(한국시간) 롤랑가로스에서 펼쳐진 남자 단식 결승에서 먼저 두 세트를 내주고도 3-2(4-6 6-7<4-7> 6-4 7-6<7-3> 7-6<10-2>)로 전세를 뒤집는 대역전승을 거뒀다.
신네르는 4세트를 별렀다. 게임 스코어 5-3으로 앞서나간 그는 알카라스의 서브 게임에서 40-0으로 달아나며 챔피언십 포인트에 도달했다. 벼랑 끝에 몰린 알카라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불굴의 정신력으로 무장한 채 기어이 듀스로 끌고 가더니 이 게임을 따냈다. 그는 4세트 역시 타이 브레이크 승부 끝에 이기면서 신네르와 5세트를 맞았다.
둘은 지칠 법도 했지만 한 치의 물러섬 없이 난타전을 치렀고, 또 한 번 타이 브레이크에 돌입했다. 승자는 알카라스였다. 신네르는 4시간 이상 넘어가는 경기에서 승리한 적이 없을 만큼 체력이 큰 약점으로 꼽히는 선수다. 반면 알카라스는 체력과 지구력이 뛰어나다. 5세트까지 간 마지막 타이 브레이크는 알카라스의 독무대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초반부터 7-0으로 달아난 뒤 10-2로 승리하며 대역전 드라마를 썼다. 메이저대회 남자 단식 결승에서 챔피언십 포인트 위기를 3번이나 넘기고 역전승을 따낸 것은 알카라스가 최초다.
알카라스는 신네르와의 맞대결에서 최근 5연승을 달리며 통산 전적도 8승4패로 격차를 벌렸다. 알카라스는 “내가 계속 이기지 못할 것은 분명하다. 신네르도 더 강해져서 돌아올 것”이라며 “나도 계속 노력해야 한다. (신네르와) 앞으로 메이저 결승에서 더 자주 만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