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수(義手) 화가’ 석창우(70) 화백은 우리나라 장애예술계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이웃집 아저씨 같은 선한 인상의 그가 어깨에 단 의수에 붓을 꽂고 곡예하듯 펼치는 ‘수묵 크로키’ 작업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넘어 인간승리의 한 장면으로 기억된다. 청년 시절 어이없는 감전사고로 두 팔을 잃고 한때 실의에 빠졌으나 그의 그림 재능을 발견한 아내 덕에 세계인이 인정하는 ‘의수 화가’로 우뚝 섰다. 그의 작품은 초등학교 학습만화, 중·고교 17종의 교과서에 실렸다. 2014년 소치 동계패럴림픽 폐막식과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 폐막식에서 전 세계인이 보는 가운데 ‘수묵 크로키’ 퍼포먼스를 펼쳐 해외 언론의 극찬을 받았다. 독실한 신앙인은 그는 ‘팔 있는 30년보다 팔 없는 40년’이 더 행복하다고 공개적으로 말한다.
석 화백이 지난 3월, 1000여 장애예술인들의 모임인 (사)한국장애예술인협회의 신임 회장으로 취임했다. 한 명의 장애작가에서 우리나라 장애예술인의 창작 지원과 복지 향상을 위해 활동하는 대표가 됐다. 지난 20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자택에서 그를 만나 고단했던 그간의 삶과 동료 장애예술인의 창작 현실을 들어봤다.
―한국장애예술인협회 회장을 맡게 됐는데.
“한국장애예술인협회는 2013년부터 이사로 참여했다. 전임 방귀희 회장이 잡지 제호를 부탁하면 기쁜 마음으로 만들어주면서 도왔다. 장애예술인에게 필요한 공간인 ‘이음센터’도 만들고, 장애예술인지원법 제정운동을 하는 등 많은 활동을 하는 단체다. 방 회장님이 좋은 일(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이사장으로 취임)로 협회를 떠나면서 회원들이 저에게 회장을 맡을 것을 부탁해 흔쾌히 수락했다. 지금까지는 내 작업에만 몰두했지만, 앞으로 동료 장애예술인을 위해 헌신할 생각이다. 몸의 불편 때문에 예술성이 낮게 평가받지 않는 사회적 인식이 형성될 수 있도록 내 역할을 다할 생각이다.”
―작품의 영감이나 소재는 어떻게 찾나.
“인체의 움직임에 영감을 얻는다. 초기에는 주로 누드를 그렸는데, 요즘은 스포츠 경기를 보면서 작품을 구상한다. 누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회전, 점프와 같은 역동적인 동작에 끌린다.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때 미셸 콴이라는 피겨 선수가 은메달을 땄는데, 금메달 딴 선수보다 몸짓이 훨씬 더 자연스러웠다. ‘그런 걸 표현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때부터 스포츠 선수의 동작에 매료됐다. 광명돔 경륜장에서 전시회를 하다가 경륜 경기를 구경하게 됐는데, 선수들의 역동적인 포즈가 마음에 닿아 그때부터 선수들의 경기 동작을 담은 작품을 많이 그렸다. 나 같은 장애인은 온몸이 그림 도구다. 팔로만 그리는 게 아니다. 비장애인은 대부분 손목이나 팔꿈치를 쓰지만 저는 팔꿈치 위까지 없다 보니 그걸 사용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몸 자체를 움직여야 붓질이 된다. 몸 전체를 활용해 붓질하니 작품도 퍼포먼스도 보는 이의 입장에서는 감동적이라고 한다.”
―석 화백만의 독창적인 ‘수묵 크로키’ 화법은 어떤 것인가.
“1990년대까지는 주로 서예가로 활동했다. 대한민국 서예대전 등 각종 공모전에서 상을 많이 받았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되니 나만의 화법을 갖고 싶었다. 1999년에 우연히 누드 크로키 강의를 접하고 사람의 몸이 새로운 형상으로 꿈틀거리는 것에 매료됐다. 그때부터 붓 대신 연필을 의수에 끼우고, 온종일 연습했다. 반려견부터 아침에 조깅하는 사람까지 인체의 움직이는 모든 것을 짧은 시간 안에 특징을 잡아 그리는 작업을 반복했다. 크로키가 익숙해질 때쯤 붓을 다시 끼웠다. 먹에 묵을 곱게 갈아 붓을 적셨다. 오랜 연습 끝에, 나만의 ‘수묵 크로키 화법’을 만들었다. 간결하면서도 힘 있는 붓 터치로 대상의 순간 움직임을 포착해 빠른 시간에 표현하는 기법이다.”
―소치 동계패럴림픽 폐막식 때 세계인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는데.
“2011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후보 도시 조사평가를 위해 방한한 16명의 위원 앞에서 선보인 시연이 반응이 좋았다. 그 결과로 감전사고로 두 팔을 잃은 지 30년이 되던 해에 하나님이 나를 패럴림픽 무대에 세우셨다. 어려움도 있었다. 수묵 크로키 퍼포먼스에 주어진 시간이 당초 8분이었으나 주최 측에서 2분 40초로 줄여 달라고 갑자기 요청해 와 당황했다. 몇 번 리허설을 해보니 도저히 시간이 맞질 않았다.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번 시연을 하고 나면 온몸의 기운이 다 빠져버릴 정도였다. 천신만고 끝에 실수 없이 시연을 펼쳤고, ‘인간승리의 감동적인 장면’으로 해외 언론의 호평을 들었다. 제 인생에 잊지 못할 벅찬 순간이었다.”
―6년간 매일 4∼5시간 성경 필사를 했다고 들었다.
“누가복음 11장 9절에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신앙인으로 정신을 다잡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다. 2015년 1월 31일부터 서예로 성경을 필사하기로 결심했다. 매일 4~5시간 두루마기 화선지(25m×47㎝)에 한 자씩 집필하였는데,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오자가 나오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하루의 목표량을 성취하는 희열은 컸다. 2023년 1월 31일 8년 만에 개신교 성경, 가톨릭 성경, 기독교 성가, 천주교 찬송가를 모두 필사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장애예술인의 창작여건은 여전히 열악하다는데.
“아직도 여전한 장애인에 대한 편견 해소가 시급하다. 미국의 정신의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올리버 색스는 “장애는 단순한 신체적 손상과 결여가 아니라 다른 지각 세계, 다른 생활 세계를 만들어 내는 가능성의 영역”이라고 말했다. 장애가 있으면 자신들의 신체적 환경에 맞춰 각기 다른 감수성을 개발한다. 제가 팔을 잃음으로써 그림의 재능을 발견한 것처럼 비장애인이 놓친 또 다른 세계, 몸과 정신의 특별한 능력을 발견하게 된다. 장애인이 창작활동을 하는 이유도 비장애 예술가와 다르지 않다. 들끓는 창작 요구가 있어 그림도 그리고 시를 쓴다. 그런데 창작여건은 형편이 없다. 경제적 사정으로 온종일 방 안에 갇혀 산다. 작품 활동을 할 작업 공간이 없다. (비교하기는 그렇지만) 장애체육인의 그것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형편이 없다. 장애체육인들은 2005년부터 대한장애인체육회를 출범시켜 비약적 성장을 이뤘다. 장애체육인 200명가량은 정부로부터 경기력 향상 연금을 최대 100만원씩 받고 있지만, 장애예술인들에게 이런 배려가 없다. 장애예술인을 위한 창작지원금 제도 마련을 위해 노력했지만, 기재부 등 부처에서는 예산 타령만 해 진전이 없다. 이재명정부에서는 장예인예술 창작지원금 제도에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란다. 큰 기업들이 스포츠단을 운영하듯이 하나의 기업이 한 명의 예술가를 지원하는 시스템도 고려할 만하다.”
―석 화백의 인간승리를 보고 많은 이들이 교훈을 얻는데.
“저는 ‘손이 있는 30년보다 손 없는 40년이 더 행복하다’고 늘 말한다. 빈말이 아니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이들이 많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나!’며 낙담만 하면 답이 없다. 현실을 불평만 하기보다는 현재를 인정하고 거기서 출발해야 한다. 부족하지만 저의 삶을 참고로 하면 조금 힘이 나지 않겠나. 제가 사고가 났을 때 기왕에 사고가 난 것이면 다른 직원이 사고가 나지 않고 차라리 내가 사고가 난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니 의수를 착용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 감사할 수 있었다. ‘물 위를 걷는 것이 기적이 아니고 땅 위를 걷는 것이 기적’이란 말이 있다. 하루하루가 기적임에 감사하는 삶을 살 줄 알아야 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고희인데 아직은 건강한 편이다. 국내는 물론 세계 각국을 다니며 전시회도 갖고 퍼포먼스하며 예술혼을 불사르고 싶다. 더불어 장애예술인을 대표하는 입장에서 실의에 빠진 장애인이나 사회적 약자에게 나의 삶을 들려주고 용기를 갖도록 독려하는 강연도 많이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