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는 19세기에 제작된 기관총 한 정이 전시돼 있다. 미국인 리처드 개틀링이 발명했다고 해서 ‘개틀링 기관총’으로 불리는 무기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조선 정부의 부탁으로 개입한 일본군이 바로 이 개틀링 기관총을 사용했다. 그해 10∼11월 충남 공주 우금치 일대에서 농민군과 일본군 간에 교전이 벌어졌다. 구식 화승총과 죽창 등으로 무장한 농민군은 쉴 새 없이 실탄을 쏘아 대는 기관총 앞에 무력하기만 했다. 동학혁명의 성패를 결정한 우금치 전투는 일방적인 살육전이었다.
동학혁명의 발단은 조선 말기 탐관오리의 악행이다. 1892년 오늘날 전북 정읍에 해당하는 고부(古阜)에 군수로 부임한 조병갑이 축재를 위해 온갖 부정행위를 저지르자 농민들이 들고일어난 것이다. 1894년 들어 ‘녹두 장군’ 전봉준(1855∼1895)을 중심으로 뭉친 농민군은 고부 관아를 점령하고 그간 조병갑이 수탈해 간 양곡 등 재산을 몰수해 주민들에게 나눠줬다. 그러자 조선 정부는 청나라에 농민군을 진압할 군대 파견을 요청하고 이것이 일본군 파병으로까지 이어졌으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