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공학기술/ 이상엽/ 김영사/ 2만1000원
기후변화로 인한 환경 위기, 에너지 고갈 문제, 전염병과 노화에 맞설 의료 및 생명공학 기술, 자원부족, 데이터 폭증…. 인류가 당면한 거대한 과제들이다. KAIST 교수이자 대사공학분야의 권위자인 저자는 이런 난제를 풀어내기 위한 각종 기술과 해법을 소개한다. 이산화탄소를 자원으로 전환하는 기술, 미생물을 이용한 바이오연료 생산, 인공지능에 기반한 신약 개발, DNA에 데이터를 저장하는 기술 등 그동안 짧은 뉴스로만 접하던 지구적인 난제를 풀기 위한 첨단 기술의 구체적 사례를 제시한다.
책에 따르면 매년 전 세계에서 수천만t씩 쏟아지는 플라스틱은 썩지 않고 바다로 흘러가고 땅에 파묻혀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 저자를 비롯한 대사공학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할 결정적 단서를 미생물에서 찾고 있다. 대사공학(Metabolic Engineering)은 생물체의 세포 내 대사 경로를 인위적으로 조작해 유용한 물질을 생산하거나 생물학적 기능을 향상시키는 기술공학을 말한다. 실제 플라스틱을 분해할 수 있는 효소를 생성하는 미생물 개발은 성공 단계에 있다. 이 기술은 PET(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라는 가장 많이 쓰이는 일회용 플라스틱을 먹고, 물과 이산화탄소로 분해하는 능력이 핵심이다. 현재 이 기술은 단순한 실험실의 성과를 넘어 산업화 단계에 가까워지고 있다. 기존 화학적 플라스틱 재활용이 고온·고압 등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반면, 미생물 기반 재활용은 에너지 소모가 적고 환경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 미생물 기술이 향후 지구의 골칫거리인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할 대안이 될 수 있다.
‘이산화탄소 자원화’ 연구도 눈길을 끈다. 공기 중에 가득한 이산화탄소는 지금까지는 온실가스의 주범으로 취급받아왔지만, 이제는 ‘미래 자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산화탄소를 원료로 플라스틱을 생산할 수 있는 인공 대사 회로를 미생물에 탑재한다.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은 ‘PHA’라는 생분해성 플라스틱이다. 이 물질은 사용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분해되어 사라진다. 이 기술은 단순히 플라스틱 문제 해결에 그치지 않는다. 온실가스 감축과 자원순환, 친환경 소재 개발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사례로 주목받는다. 머지않은 미래에 “탄소는 이제 버려야 할 물질이 아니라, 다시 써야 할 자원”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미래 항공기 연료도 미생물이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사탕수수나 옥수수, 식물성 폐기물 등을 분해해 연료를 생산할 수 있는 미생물 설계 기술이다. 기존 바이오에탄올과 달리, 이 기술은 항공기나 선박에 사용할 수 있는 고밀도 연료까지 생산 가능하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무엇보다 대규모 산업적 활용 가능성이 높아, 이미 일부 항공사가 시험비행을 준비하고 있다. 화석연료가 아닌 생물자원을 활용하는 이 방식은 탄소 배출량을 크게 줄이고, 에너지 자립도를 높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