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미 전역이 ‘물폭탄’에 뒤덮였다. 7월4일부터 시작된 미국 독립기념일 연휴 기간 발생한 대홍수로 남부 텍사스주에서 최소 135명이 사망한 것을 시작으로 약 2주 동안 뉴멕시코(남서부), 일리노이(중부), 노스캐롤라이나(남동부), 메릴랜드(동부), 뉴욕(북동부) 등 거의 미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급류성 홍수가 발생한 것이다. 불과 몇 시간만에 급작스럽게 내리는 비로 일리노이 시카고와 같은 대도시와 수도 워싱턴 인근 메릴랜드 몽고메리 카운티 등에서 도로가 물에 잠기고 사람들이 자동차를 물에 잠긴 도로 한가운데 버리고 나오는 모습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원래 미국에서 6월 말부터 8월 초까지는 홍수가 자주 발생하는 시기이지만, 올해는 특히 그 정도가 심각하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에 따르면 미국 전역에서 7월 한 달 동안만 1200건 이상의 홍수가 보고됐으며 이는 예년의 두 배 이상으로 집계됐다. 특히 텍사스, 일리노이(시카고) 등에서 발생한 일부 홍수는 1000년에 한 번 있을 확률(연간 발생 확률 0.1%)의 강우로 평가되고 있다. 기후과학자들은 미국의 이례적인 7월 대홍수가 기후변화의 재앙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물폭탄 맞은 미 전역
◆전례 없이 습한 美 여름… “기후변화 원인”
7월 이례적인 극단적 폭우는 각 지역마다 고유한 원인이 있지만 미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미 전역을 뒤덮은 막대한 양의 대기 수증기가 주요 원인이 됐다고 보고 있다. 특히 올해 여름엔 미국 중부와 동부 지역에서 비정상적으로 높은 습도가 관측됐다. 뉴욕, 워싱턴 등 동부 도시에서는 7월 한 달간 체감 온도가 섭씨 40도를 넘긴 날이 다수 보고됐는데 실제 온도가 30도 안팎이었던 것에 비하면 습도의 정도를 알 수 있다.
대기 수증기 과다 현상은 지구 온난화로 인한 북반구 전역의 비정상적으로 고온인 바다로부터 유입된 것으로 열대 수증기 기둥은 중위도 지역까지 흘러들어와 정체되게 하고 결과적으로 홍수 위험이 급증하는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이 전문가 설명이다. 기온이 1°C 올라갈 때마다 공기가 머금을 수 있는 수증기량은 7% 증가한다. 이는 폭풍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어 강수량을 증가시킨다.
케빈 트렌버스 미 국립대기연구센터 연구원은 워싱턴포스트(WP)에 “지구 온난화는 확률 자체를 바꿔놓았다”며 “높아진 해양 열 함량은 대기 수증기를 증가시키지만 이 추세는 간과돼왔다”고 지적했다. 수온 상승은 현재도 진행형이어서 8월까지 미 전역에 홍수가 계속될 것이라는 관측을 낳고 있다. 향후 2주 내에도 추가적인 폭우가 미국 곳곳에서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은 이상 기후 현상은 향후 미국의 여름 기후로 고착화될 가능성이 크다. 마이클 만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기상학 교수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1000년만에 한번 일어날 만한 홍수라는 말은 온난화가 없을 경우에 그렇다는 것”이라며 “이제는 인간이 초래한 온난화 때문에 그런 일들이 더 자주 일어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대기의 기류가 특정 패턴으로 반복, 강화되면서 기상 현상이 몇 주 동안 정체 상태에 머무르는 ‘대기 공명’ 현상을 언급하며 이 같은 이상 기후가 여름철에 미국에 고착화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재난 대응 도마… 백악관 “신의 뜻”
거듭되는 홍수와 인명피해는 연방정부의 재난 대응 기능 축소와 화석연료 사용 확대 정책 추진 비판에 다시 불을 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취임 직후 연방재난관리청(FEMA)을 폐지하겠다고 공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여러 연방정부 개혁의 일환으로 FEMA가 비효율적이고 재난 대응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이유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난 관리의 75%를 연방 정부가 부담하는 미국의 재난 대응 구조는 도덕적 해이를 불러온다며 재난 관리는 주정부가 맡아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FEMA 인력의 20%를 감축했으며 재난 완화 프로그램 예산 36억달러가 동결됐다. 또 FEMA의 10만달러 이상 모든 지출 승인에 상위 기관인 국토안보부 장관이 서명하도록 했다.
텍사스 홍수 직후 연방 정부의 재난 대응이 줄어들었다는 비난이 빗발쳤다. 하지만 크리스티 노엄 국토안보부 장관은 인력 감축으로 홍수 당시 전화 응답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주장을 “가짜뉴스”라고 일축했다. 이미 600명 이상이 감원된 기상청 역시 인력 부족으로 이번 홍수와 관련해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됐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홍수 뒤 기상청 인력 복원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이번 홍수로 화석 연료 개발과 사용 증가 등 트럼프 대통령의 환경 정책도 다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재난 원인과 관련해 기후변화 등의 언급을 일절 하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텍사스 홍수로 130여명이 사망한 직후인 지난 6일 현지를 찾아 유가족들을 위로하면서도 “급작스러운 사건”이라며 사전 예측이나 대응 실패보다는 우발성에 초점을 맞추는 태도를 보였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텍사스 홍수와 관련해 브리핑에서 “신의 뜻(act of God)”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