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19세기 말 보불전쟁(1870-1871)에서 프로이센(현 독일)에 패한 후 그 원인을 군사력의 열세가 아닌 출산율 저하로 인한 인구증가율 둔화와 그에 따른 국력 약화로 돌렸다. 이를 계기로 여야 대부분 정당과 시민사회단체들은 출산율 제고를 통한 인구증가를 주장했다. 이른바 ‘인구주의(populationism)’가 등장한 것이다. 이러한 인구주의는 이후 출산율이 낮은 대부분 국가에서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한국 역시 2000년대 초 초저출산(합계출산율 1.3명 이하) 국가로 진입한 이래로 지속적으로 인구주의에 기반한 정책을 꾸준히 추진해 왔으나 출산율은 여전히 세계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최근 다소 반등하는 모습을 보이고는 있으나 중장기적으로 인구대체수준(합계출산율 2.1명)으로 회복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며 1.3명 이상으로 회복도 쉽지 않을 듯하다. 사회문화적 환경, 기술 수준, 생활양식, 가치관 등이 크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국민에게 과거와 같은 보편혼과 다출산(2자녀 이상)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즉 인구증가시대의 종말이 도래한 것이다.
미래 인구감소시대의 주된 인구학적 특징은 인구 고령화이다. 우리나라 인구구조는 점차 역삼각형 피라미드로 변화하고 있는데, 이는 마치 유소년 인구가 꼭짓점에 서서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노년 인구를 떠받들고 있는 역설적인 모양이다. 2024년 합계출산율 0.75명, 2072년 노년부양비 104.2명은 이러한 구조를 잘 보여주는 수치로, 과거 20세기 유럽의 정상적인 인구구조를 전제로 설계된 기존의 복지국가 시스템이 더 이상 한국 사회에서 제대로 기능할 수 없을 것을 보여주는 경고 알람이기도 하다.
연금, 건강보험, 장기요양보험과 같은 복지제도는 일하는 세대가 은퇴 세대를 부양하는 세대 간 재정 이전 구조에 기반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인구구조가 급격하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시스템은 지속가능성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복지국가가 암묵적으로 가정해 온 ‘집단 연대(solidarity)’의 약화이다. 과거에는 건강한 사람이 아픈 사람을 부양하고 젊은 사람이 노인을 부양하는 세대 간 계약이 작동하였으나, 현재 청년층은 미래에 자신이 납부한 만큼의 혜택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불신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이삼식 한양대학교 고령사회연구원 원장 인구보건복지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