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쇠붙이가 산화하여 빛이 변하다.’ ‘2. (비유적으로) 오랫동안 쓰지 않고 버려두어 낡거나 무디어지다.’
국어사전을 펼쳐 찾아본 ‘녹슬다’란 말의 뜻이다.
선과 도형을 활용해 추상화를 그리는 작가 김지훈이 서울 중구 회현동 금산갤러리에서 ‘녹화중 Rusting’이란 문패를 내걸고 연작 ‘Dancing Line―Sun and Moon’(댄싱 라인―해와 달)을 선보이고 있다. 3년 만에 공개하는 새로운 시리즈다. 조형 중심으로, 회화의 시각적 탐구를 넘어 인간관계와 시간, 감정의 결을 함께 사유하는 자리다.
김지훈은 회화에 기반을 두지만, 사진·조각·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번 개인전은 ‘녹슬다’가 가진 두 가지 의미를 모두 품고 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관계와 감정이 서서히 변화하고 퇴색하는 과정을 산화된 화면 위에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눈여겨볼 것은 이번 연작에서 작가가 이전 작업의 상징이었던 드리핑(붓을 사용하지 않고 물감을 뿌리거나 떨어뜨리는 기법) 선을 과감히 생략하고, 대신 화면의 면과 질감 자체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물감이 겹겹이 중첩된 화면은 산화된 표면감을 드러낸다. 시간의 흐름과 관계의 퇴색, 감정의 변화 과정을 은유하는 것이다. 인간관계를 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던 이전과 달리 이번에는 관계의 내부로 깊이 들어가 보다 주체적이고 내밀한 시선으로 감정의 결을 조명한다.
그의 회화에 등장하는 선과 면은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 기법을 응용해 만들어졌다. 2000여가지 색을 활용한 다층적 색면은 추상 회화의 정신과 더불어 감각 에너지를 전달한다. 이러한 선과 도상, 시간의 얼룩과 결들이 만들어내는 화면은 관객에게 ‘보는 것’을 넘어 ‘체험하는 회화’를 제공한다.
미술평론가 이건수는 김지훈의 작업에 대해 “화면 속 도상들은 완전하게 고정된 궁극의 형상으로 존재하려 하지 않고,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동한다”며 “이는 회화가 공간예술이 아닌 시간예술이 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고 정리한다.
이번 개인전은 선과 색, 감정과 시간의 겹침 속에서 인간관계의 내밀한 리듬을 그려내며, 회화가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는지를 한눈에 조망하는 자리다. 그의 작품은 관계의 균형과 충돌, 계획과 우연이 교차하는 삶의 리듬을 섬세하게 들춰내면서 추상회화의 또 다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8월9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