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코알라는 호주의 ‘동물 외교관’(animal ambassadors)으로 불린다. 중국의 판다와 비슷하게 호주의 코알라도 외국 동물원에 장기 임대 형식으로 보내져 두 나라 간의 우호를 상징하는 역할을 한다. 오직 호주에만 서식하는 코알라는 개체 수 감소로 정부의 보호를 받는 ‘귀하신 몸’이다.
호주는 코알라, 캥거루를 비롯해 다른 대륙에서는 접하기 힘든 희귀 포유류 동물을 여럿 갖고 있다. 몸통은 수달과 비슷하고 얼굴, 특히 입은 꼭 오리처럼 생긴 오리너구리(일명 ‘오리주둥이’)도 그중 하나다. 오늘날 코알라를 동물 외교관으로 삼기 전에 호주는 오리너구리를 활용한 ‘동물 외교’를 시도했다고 하니 흥미롭다. 그런데 호주가 제2차 세계대전 도중 윈스턴 처칠(1874∼1965) 영국 총리에게 선물하려던 오리너구리가 항해 도중 죽었다는 비화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2일(현지시간) BBC 방송에 따르면 처칠은 엄청난 동물 애호가였다. 그가 집권하던 시절 영국은 세계 패권국이었고 각국이 그의 호감을 사기 위해 동물을 선물했다. 사자, 표범, 검은 백조 무리 등이 처칠 소유의 동물들 목록에 포함됐다.
하지만 정작 처칠의 눈길을 사로잡은 동물은 따로 있었다. 독특한 외모의 오리너구리였다.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처칠은 호주 외교부에 오리너구리를 보내줄 것을 부탁했다. 당시만 해도 호주는 영국의 자치령 지위였고,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공격을 막아내려면 영국의 도움이 절실했다. 이에 호주 정부는 오리너구리의 해외 반출을 금지한 규정까지 어기며 처칠의 요구를 수용했다. 멜버른 부근 강에서 잡힌 어린 오리너구리에게 ‘윈스턴’이란 이름을 붙인 뒤 영국으로 보내는 절차에 돌입했다.
영국 정부는 수송 작전을 위해 위장된 선박을 투입했다. 이 배가 운반하는 화물 가운데 오리너구리가 있다는 사실은 1급 군사 기밀에 부쳐졌다. 호주에서 영국 런던까지의 항해는 대략 45일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 기간 오리너구리의 생명에 지장이 없게 충분한 숫자의 벌레 등 먹잇감과 호주 개울에서 퍼 나른 다량의 물이 선박에 실렸다.
배는 태평양을 횡단한 뒤 파나마 운하를 거쳐 대서양으로 진입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얼마 안 돼 윈스턴은 선박 안에서 죽고 말았다. 보고를 들은 처칠은 호주 외교부 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호주 정부의 호의에도 불구하고 오리너구리가 죽어 슬프고 큰 상실감을 느낀다”며 비통한 심정을 드러냈다. 영국 정부는 쉬쉬했으나 이 사실은 곧 대중에게 알려졌다. 언론은 당시 대서양 일대에서 암약하던 나치 독일의 해군 잠수함 U보트가 쏜 어뢰가 바닷속에서 폭발하며 생긴 충격 때문에 어린 오리너구리가 죽었을 것이란 추론을 제기했다. 단, 영국 정부는 침묵을 지켰다.
오늘날 호주 시드니 대학교 연구팀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오리너구리 윈스턴은 먹이 부족과 기온 상승 때문에 죽은 것으로 판단된다. 오리너구리는 식욕이 무척 왕성한 동물인데 윈스턴에게 주려고 미리 장만해 둔 벌레 숫자로는 감당이 안 되었다. 더욱이 선박이 태평양의 적도 해상을 통과하던 약 7일 동안 뜨거운 바닷물 때문에 배 안 온도가 27도까지 치솟았다. 먹이 부족으로 영양이 부실한 상태에서 기온마저 상승하자 탈진해 죽었다는 것이 시드니대 연구팀이 내린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