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킹 ‘앤서 맨’(‘더 어두운 걸 좋아하십니까’(하권)에 수록, 이은선 옮김, 황금가지)
길을 가다 이런 팻말을 발견하게 될지 모른다. “앤서 맨까지 3㎞.” 팻말을 따라가면 파라솔 그늘에 앉아 있는 한 남자를 만날 수 있다. 흰색 셔츠에 회색 바지를 입고 검은색 신발을 신은 발치에 왕진 가방처럼 생긴 가방을 내려놓은. 지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그 남자 앞에 ‘앤서 맨’이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는데 때에 따라 3분이나 5분당 일정 액수를 내면 무엇이든 궁금한 걸 물어볼 수 있다. 만약 “당신의 답이 정답이라는 걸 내가 무슨 수로 알 수 있죠?”라고 묻는다면 그는 “지금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겁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질문에는 규칙이 있는데 “앞으로의 행보”는 묻지 말아야 한다는 것. 이렇게 하는 게 좋을까요, 저렇게 하는 게 좋을까요? 같은 질문들. 필이 이십 대 중반에 우연히 만난 앤서 맨은 그에게 충고했다. 똑똑한 사람들일수록 자기 문제에 관해 필요한 답을 알지 못하고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 모른다고. 필은 약혼녀와 정착하고 싶은 작은 도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빠져 있었다. 일단 앤서 맨을 만난 이상 돌아서 버릴 수 없었다. 그것이 필이 평생 세 번 만나게 된 앤서 맨과의 첫 번째 날이 되었다.
소설이 끝나면 상상하게 된다. 만약 앤서 맨을 만나면 어떤 질문을 하고 싶을까? 제가 좋은 소설을 쓰게 될까요? 부모가 돌아가시기 전에 좀 나은 데로 이사 갈 수 있을까요? 만약 앤서 맨이 아니요, 라고 대답하면? 소설 쓰길 그만둘 건가, 아니면 이 부족한 집에서 부모와 살기를 그만둘 건가. 모두 아니다. 좋은 소설을 쓰든 그렇지 않든 계속 쓰고 여전히 하루하루 부대끼며 부모와 살아가겠지. 그렇다면 이 질문들은 필이 앤서 맨을 두 번째 만났을 때 느낀 ‘대답을 듣고 싶지’ 않거나 듣지 않아도 되는 질문에 속할 것이다. 죽음을 앞둔 필이 마지막으로 앤서 맨을 만나는 걸 보며 이런 생각이 든다. 앤서 맨은 항상 우리 마음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긍정적일 때는 네, 부정적이고 자존감을 잃었을 때는 모든 질문에 아니요, 라고 대답하는. 지금 내 마음엔 어떤 앤서 맨이 자리 잡고 있는지.
조경란 소설가